여행

어느 봄날의 군산 나들이.

녹슨셔터 2015. 4. 29. 03:51

  '페이퍼코리아선'이라는 철도 노선이 있습니다. 군산화물선 종착역인 군산화물역에서 시작돼 경암동을 지나 신문용지를 만드는 회사 '페이퍼코리아' 공장까지 원료를 실어나르기 위해 만든 화물전용 단선 철도입니다.

 

2008년까지 정말 다니던 열차. 출처 나무위키

 

  경적소리는 2008년을 마지막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됐습니다. 반들반들 닳아 있어야 할 철로 위엔 녹이 잔뜩 슬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캔버스로 다시 태어나 '군산 부흥'의 효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2013년 봄 군산을 처음 다녀왔습니다. 처음엔 경기도 화성에서 요트 선착장이나 보고 올 요량으로 차를 몰았는데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다보니 어느새 군산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 방문. 금요일 오후 출장 차 군산에 갔다가 일 끝난 시간이 너무 늦어 하루를 묵었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올라오느니 차도 가져갔겠다, 여유있게 한 번 더 둘러보자 싶어서 뜻 밖의 군산 나들이를 2년 만에 하게 됐습니다.

 

  2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경암동 철길마을이 변화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철길마을읠 2013년 봄과 2015년 봄을 사진으로 비교해 봤습니다. 2015년 4월 26일의 기록입니다.

  

 2013     2015

 

  철길마을의 가장 큰 변화는 '화려해진 벽'이었습니다. 2년 전만 해도 경암동 철길마을은 '꾸며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철길마을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곳의 표지판과 그 곳에 일부 그려진 벽화를 제외하면 그냥 사람이 사는 오래된 집 벽이 다닥다닥 붙은 곳이 철길마을이었습니다.

 

낡고 금 간 회벽과

 

버릴 것들로 만든 창고 

 

걷다 힘들면 쉬어가는 곳

 

여기 사람 살아요~ 하고 알려주는 빨랫줄

 

거기에 널린 빨래들

 

소박한 아이들의 놀이터

 

  2013년 철길마을의 모습은 이랬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철길마을은 이 곳이 관광지가 됐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었습니다. 물티슈로 대충 슥슥 닦아내면 잠시 누워 쉬기 딱 좋았던 방갈로 같은 휴식공간은 사라졌고, 사다리가 없어 미끄럼이라도 타려면 내려온 길을 다시 기어올라가야 하는 저 미끄럼틀도 안 보였습니다. 양 길가에 대충 기대고 서 있던 창틀 같은 자재도 꽤 깔끔하게 정리됐습니다. 굳이 꾸미지 않더라도 회칠한 벽이 늘었습니다.

 

건설현장 철판 대신 꽃그림 그려진 벽

 

  머니머니해도 가장 큰 변화는 '가게'가 늘었다는 겁니다. 예전엔 철길마을 자체에 뭘 살 수 있는 공간은 없었습니다. 물이라도 한 통 사 마시려면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철길마을 뒤에 있는 '주상복합' 건물에 있는 가게로 가거나, 길을 건너 대형마트를 이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커피, 아이스크림, 주전부리에서 기념품까지, 어지간한 관광지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이 곳에서 모두 살 수 있게 됐습니다.

 

공터엔 이런 매점과 추억 파는 가게가 생겼고

 

철길 중간중간에는 방갈로 대신 주전부리 가게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살던 집 일부는 커피숍으로.

 

  사진의 분위기를 보면 아시겠지만, 호젓하던 철길 위도 제법 많은 관광객들로 붐빕니다. 평일에 가거나 오전에 일찍 가지 않으면 이제 경암동 철길을 호젓하게 걷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국내 여행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경암동 철길마을처럼 옛 정취를 간직한 곳이 관광지처럼 변해가는 것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그걸 뭐라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서울 수도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역경제가 내리막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관광객 한 명이라도 더 끌어오고, 지역 주민들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상업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어찌 뭐라 할 수가 있을까요.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길 원한다면, 그렇게 돈벌이를 하지 않고도 지역 주민들의 소득이 충분할 만큼 관광객이 방문해 주고 돈을 써 줘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위해 변해야 하는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뭐, 그렇다고 경암동 철길마을이 싹 다 변했다는 건 아닙니다. 관광지 정취가 안 나는 반대쪽 끝자락 쪽이긴 하지만 2년 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은 풍경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철길에 오물을 버리면 처벌받는다는 녹슨 경고와, 그 경고판 아래 파랗게 일궈진 파 밭이 2년 전 얼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왼 쪽이 2013년, 오른쪽이 올해. 세월의 흔적만 더 늘었습니다.

변하지 않은 풍경.

 

  한 갈래 길쭉한 철길을 따라 난 마을인 탓에, 이 곳에서 한 쪽 방향을 택하고 구경하다보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을 계속 따라가면서 구경하는 재미있는 상황이 생깁니다. 맘에 드는 이성이 있다면 슬쩍 말 걸어보기도 그만큼 수월한 여행지가 바로 이 경암동 철길마을입니다. 특히 젊은 여행객 중에 여자 둘셋넷이 온 사람들은 많아도 남자 둘셋넷이 온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남여 커플은 있어도 남남은 없어요. 남자 둘셋넷이서 국내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 번 따라가기 시작하면 계속 따라가게 되는 마성의 여행지.(2013/2015)

 

  경암동 철길마을은 군산 이마트에서 길만 건너면 바로 갈 수 있습니다. 길가에 늘어선 가게 골목으로 쑥 들어가면 그 곳에 없을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횡단보도 한 번만 건너면 30년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곳이 경암동입니다.

 

●활기는 뜨고 해는 지는 도시

 

  군산에 왔다면, 일몰 한 번은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바다 위로 지는 일몰, 강가로 지는 일몰 등 다양한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 군산입니다. 저는 2013년엔 새만금에서 바다 위로 지는 해를 바라봤고, 올해는 금강 하구에서 강 위로 지는 노을을 감상했습니다.

 

  새만금을 갈 예정이라면, 저는 자가용이나 렌터카를 추천합니다. 일단 군산 시내에서 이십 몇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데다 거기서 일몰 장소까지 또 10키로미터 이상을 달려야 합니다. 버스 노선은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다니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려면 신경이 많이 쓰이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최소한 콜택시 번호를 반드시 하나 정도 적어서 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다만 거리가 좀 되니 요금도 그 만큼 많이 나올 수 있습니다.

 

2013년 새만금에서 찍었던 노을 사진. 이 땐 줌 되는 카메라가 없어서 해는 손톱만하게...

 

  양 쪽으로 파도치는 바다 사이를 달리는 기분은 썰매보다 상쾌합니다. 새만금 방조제 길을 한참 달리면 중간에 일몰을 볼 수 있도록 휴게소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간단한 주전부리도 사 먹을 수 있고 전망대에서 일몰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바다 한 가운데인 고로 바람이 무척 분다는 겁니다. 해가 떨어지면 매우 빠르게 어두워지고 기온도 떨어지니, 반드시 덧옷을 준비하시길 권합니다.

 

  올해 일몰을 본 곳은 금강 하구 둑이었습니다. 이 곳은 그리 멀지 않아 택시를 타도 요금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돌아올 때를 대비해 콜택시 번호는 반드시 적어 두시기 바랍니다. 버스는 역시 그리 편해보이진 않았습니다. 이번에 갔더니 자전거도로가 잘 정비돼 있어서, 자전거로 금강 하구 둑을 따라 여행하는 분들도 꽤 많이 보였습니다.

 

금강 하구의 해 지는 풍경.jpg

금강 하구의 해 지는 풍경2.jpg

 

  금강 쪽 일몰을 보시려면, 금강하구둑도 좋고, 거기서 1km 정도 더 들어간 금강철새조망대 맞은편 공원도 좋습니다. 새만금과 달리 바람도 세지 않고, 시내와 가깝기 때문에 일몰을 본 후 빠르게 시내로 돌아가 허기를 달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누가 저보고 군산을 한 마디로 표현해 보라면, '해는 지고 활기는 뜨는 도시'라고 설명해주고 싶습니다. 그동안 개발계획에서 소외되면서 힘 빠져 가던 도시 군산은 최근 새만금 개발 계획과 1940년대 분위기 물씬 나는 구도심 분위기를 앞세워 점차 활기를 되찾는 도시로 변하고 있습니다. 활기를 되찾는 만큼, 언제 어떻게 도시가 변할 지 모르고, 얼마나 이 곳을 찾는 사람이 늘어날 지 모르죠. 옛 정취 나는 한적한 군산을 보고 싶은 분이라면,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군산을 찾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소박한 맛집과 소박한 멋집

 

  전라도 하면 떠오르는 상다리 휘는 한정식이 아니어도, 전주 비빔밥같이 나라를 대표하는 유명 음식이 아니어도, 군산엔 소박한 맛집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군산에는 중화요리집이 많습니다. 일제시대, 수탈 거점으로 쓰였던 군산항에 일을 하러 온 중국 사람도 많았고, 자연스레 중국집이 많이 생겨났다네요. 2년 전에 갔던 곳은 짬뽕으로 유명한 복성루.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맛이라고 하는데 전 매우 맛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해물탕 맛 나는 짬뽕이 아니라 라드와 고추기름 가득한 칼칼한 탁한 국물이 인상적이었어요.

 

  군산에는 복성루 말고도 유명한 중국집이 더 있습니다. 직접 가 보진 않았지만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중국집으로 유명한 '빈해원', 복성루와 함께 3대 군산 짬뽕으로 불리는 쌍용반점과 수송반점 등이 복성루와 함께 군산 짬뽕 기행을 고민하게 만드는 곳들입니다.

 

복성루와 그 외 짬뽕에 관한 정보는 여기로...

 

  이번에 갔던 곳은 중국집이 아닌 메밀국수 집이었습니다. 군산에서는 나름 유명하다는 '서울소바'라는 집이었습니다. 복성루 같은 곳처럼 줄 서서 먹을 필요는 없고 맛은 이곳저곳 먹어본 메밀국수 맛 중에선 맛 있는 편에 드는 집이었습니다.

 

서울소바에 관한 정보는 여기로...

 

  빵을 좋아한다면 낮에는 시간을 내서 이성당 문 앞에 줄을 서셔야겠죠. 가장 유명한 야채빵과 쌀단팥빵은 하루 두 번만 내기로 유명하다는데, 저는 제 내키는 시간에 가서 두 번 다 한 시간도 기다리지 않고 샀습니다. 워낙 전국에서 많이 몰려오다보니 시간을 가리지 않고 구워내는 것 같았습니다. 이성당은 최근 서울 잠실 롯데백화점 지하에 분점을 내서 이젠 서울에서도 먹어볼 수 있게 됐습니다. :)

 

이성당에 관한 정보는 여기로...

라기엔, 이성당 정보는 디테일한 곳을 그다지 못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