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항한 LJ037 편은 왜 비상 상황에서 두 시간이나 맴돌았을까.
2016년 2월 6일 부산을 출발해 필리핀 세부로 갈 예정이었던 진에어 LJ037 항공기가 이륙 직후 엔진에서 불꽃이 튀었다는 승객의 신고를 받고 인천공항에 긴급 착륙했습니다. 항공사는 계기상 엔진에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지만 아무튼 신고를 접수하고 회항을 결정하고 착륙하기까지 불안감을 느낀 승객들도 있었을 수 있습니다.
회항한 항공기인 진에어 HL7555 항공기. (출처 planespotters.net)
그런데 시간을 보면 ‘긴급 착륙’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긴 시간동안 공중에 머물렀습니다. 회항 항공편인 LJ037은 밤 9시 35분에 출발하는 항공편입니다. 보도된 이륙 시간은 밤 9시 51분. 그런데 인천공항에 착륙한 시간은 이로부터 약 2시간 후인 밤 11시 50분 쯤입니다. 상공에서 두 시간이나 머무느라 이 비행기는 결국 출발지인 부산에 착륙하지도 못하고 인천으로 가야 했습니다. (인천공항을 제외한 우리나라 대부분 공항은 밤 11시 이후 이착륙이 금지됩니다.) 엔진에 문제가 있었다면 즉시 착륙했어야 할 텐데 착륙까지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을까요.
회항 항공기의 비행 궤적. 수 차례 홀딩(원형비행)을 했습니다. (출처 Flightradar)
진에어 측은 "착륙하기 위해 비행기 무게를 줄이느라 연료를 소모시키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적잖은 항공기에는 '연료배출장치(Fuel Jettison System)'이라는 장치가 있습니다. 연료를 소모시키는 게 아니라 허공여 연료를 버려 빨리 착륙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장치입니다.
노스웨스트항공 B747-400기의 연료 배출 영상. B737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럼 진에어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저가항공사라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그런 장치를 달지 않은 건 아닐까? 아닙니다. 이유는 해당 항공기가 보잉사의 737-800기였기 때문입니다. 이 항공기는 연료배출장치가 설계부터 장착되지 않은 항공기입니다. 연료를 버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보니 두 시간동안 하늘을 빙빙 돌아 연료를 태워 없애야 했던 겁니다.
호주의 두 메이저 항공사 콴타스의 B737(왼쪽)과 버진오스트레일리아의 B777 날개 비교.
B777에는 있는 연료 배출구가 B737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진에어 외에도, 모든 737 여객기에는 이 장치가 없습니다. 737 항공기뿐만 아니라 A320 계열의 항공기에도 연료 배출 장치는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737 항공기는 대한항공을 비롯해 에어부산을 제외한 모든 저가항공사에서 보유하고 있습니다. A320 계열 항공기는 아시아나와 에어부산이 주로 가지고 있습니다. 두 기종은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많은 기종으로, 전 세계에서 날아다니는 두 기종 비행기 대수를 합치면 1만5000대 가량이나 됩니다.
그럼 위험하게 왜 이들 기종은 연료 배출 장치를 달지 않았을까요. 한 마디로 정리하면 '필요 없어서'입니다. 항공기 관련 국제 규정상 달지 않아도 되고 실제 구조상으로도 별로 필요가 없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전세계 항공 규제의 표본이 되는 미 연방 항공국(FAA)의 ‘수송용 항공기의 감항성 표준(Airworthiness Standards : Transport Category Airplanes)’ 25조 1001항을 보면 연료 배출 장치 규정을 이렇게 정해놓고 있습니다.
"모든 항공기는 연료 배출 장치를 설치하여야 한다. 다만 이 규정의 25조 119항과 25조 121(b)항의 조건을 만족하는 항공기는 그렇지 아니하다."
FAA의 '수송용 항공기 감항성 표준. (출처 미연방규정집 Code of Federal Regulations)
25조 119항과 25조 121(b)항의 내용은 조금 복잡한데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모든 엔진이 작동할 때 3.2도 이상의 상승각, 엔진 하나가 작동하지 않을 때 2.4도 이상의 상승각을 유지할 수 있는 항공기."
점보 제트기인 B747이나 그보다 큰 A380, 장거리 여객기인 B777 등은 연료와 승객을 최대치까지 싣고 비행할 경우 너무 무거워서 이 조건을 만족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작은 비행기인 B737이나 A320 계열의 경우 비행기가 이륙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연료와 승객을 싣더라도 이 조건을 만족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연료 배출 시스템을 달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연료를 최대로 채우고 날아도 6시간 이상 날기 어려운 B737의 경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다보니 연료배출장치를 달지 않으려 한 점도 있겠죠. B737은 무게를 줄이다 줄이다 못해 랜딩기어(바퀴)를 접어 넣은 후 덮을 뚜껑조차 달아놓지 않았습니다.)
B737(왼쪽)과 B777의 랜딩기어(바퀴) 수납 형태 비교. (B777 영상은 여기로.)
뚜껑이 완전히 덮이는 B777에 비해 B737은 바퀴가 노출된 형태로 날아다닙니다.
그런데 연료배출장치 장착에 대한 이 규정은 1968년에 개정된 규정입니다. 그 전까지 규정은 이랬습니다.
“모든 항공기는 연료배출장치를 설치하여야 한다. 다만 항공기의 최대 이륙 중량이 최대 착륙 중량의 105% 이하일 경우에는 그렇지 아니하다.”
(최대 이륙 중량은 ‘승객과 연료를 실은 전체 무게가 이보다 무거운 비행기는 못 날아요’라는 뜻이고 최대 착륙 중량은 ‘이 무게보다 무거운 비행기는 착륙할 때 사고가 날 수 있어요’라는 의미입니다.)
이번에 회항한 진에어의 LJ037편은 B737-800 항공기이고, 최대이륙중량은 약 79t, 최대착륙중량은 약 66t입니다. 최대이륙중량이 최대착륙중량의 120%에 육박하므로, 1967년까지 규정에 의하면 연료배출장치가 달려 있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B737 여객기가 처음 세상에 나온 시점이 1968년이기 때문에 옛 규정을 적용받지 않은 겁니다. (A320은 B737보다 더 늦게 만들어졌습니다.)
연료배출장치에 대한 규정이 무게 기준에서 성능 기준으로 바뀐 건, 항공기의 안전도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걸 의미합니다. 예전 규정이 “연료 안 버리고 착륙하면 비행기가 무거워서 랜딩기어(바퀴)가 부러지거나 항공기가 상할 수 있어요”라면 현재 규정은 “연료 안 버리고 착륙하다 착륙에 실패하면 비행기가 다시 못 떠올라서 사고 날 수 있어요”라는 의미가 된 겁니다. 바꿔 말하면, 일단 떠오른 B737의 경우, 이륙 직후 문제가 생기면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하는 것보다 비행하면서 연료를 소모하는 게 더 안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엔진 하나로도 충분히 날 수 있으니 일단 무게를 줄이면서 안전을 최대한으로 확보할 것”을 권고한다는 얘기죠.
B737 항공기의 메인 랜딩기어. 랜딩기어의 무게는 항공기 전체 무게의 4% 가량 나갑니다.
강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무거워집니다. (출처 Airliners.net)
새로 바뀐 규정에 따르면, 이번 사고기인 LJ037 편의 승무원들은 대체로 적절한 판단을 했던 걸로 보입니다. 물론 엔진에 정말 이상이 있었다면 (진에어 측은 계기상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으나) 이 책임을 피하긴 어렵겠지만, 일단 승객의 신고에 즉시 회항을 결정했고, 상공에서 연료를 최대한 소모한 뒤 인천공항으로 기수를 돌린 판단은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저가항공사가 이래저래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서울-제주 노선에 의존하던 저가항공사들이 해외 노선을 늘리고 규모를 키워가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가항공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고 '싸면서 안전한' 항공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혜안을 찾아내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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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담으로, 만약 연료배출장치가 달려 있지 않은 항공기가 연료를 태울 여유도 없이 최대착륙중량보다 무거운 상태에서 착륙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그냥 착륙하면 된다’입니다. 요즘 여객기로 운행하고 있는 민항기들이 대체로 그 정도의 무게는 버티면서 착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FAA 규정을 보면 항공기의 랜딩기어는 착륙 중량에 대해 초당 3m(10피트)의 강하율로 지상에 접지했을 때 버틸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합니다. 분당 180m(600피트)의 강하율인데, 이 정도면 비행기가 공항에 접근하기 위해 빠르게 내려가는 강하율과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실제 비행기가 땅에 닿는 순간의 강하율을 초당 0.5~1m(2~3피트)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눈·비 때문에 활주로가 미끄러운 경우 시도하는 경착륙 시에도 접지 강하율은 초당 2m(6피트)를 넘지 않습니다.
Jet Airways B737-700 항공기의 착륙(Touchdown) 순간. (출처 Avsim.net)
착륙하기 직전 사진처럼 머리를 들고 강하율을 크게 줄입니다.
(참고로 B737-700 항공기는 국내에서는 이스타항공이 단 세 대만 보유한 '레어템'입니다.)
실제로 연료를 태울 사이도 없이 비상착륙해야 하는 경우가 벌어졌어도 큰 사고로 이어진 경우는 거의 없는 모양입니다. 보잉사에서 서비스 통계를 살펴봤더니 “최대착륙중량 초과 착륙으로 인한 항공기 손상은 ‘지극히 드물었다’고 하네요. 그 정도는 버틸 수 있게 설계되어 있으니 이도저도 안 될 때는 과감히 착륙하라는 뜻이겠지요.
출처 AERO, 2007년 (보잉사가 발간하는 항공기술잡지)
++) 그럼 B747, A380처럼 연료배출장치가 달린 대형 비행기들은 비상상황에 얼마나 빨리 착륙할 수 있을까요. FAA에서는 이에 대한 규정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저 위에 언급한 감항성 표준 25조 1001항에 함께 언급돼 있습니다.
“연료배출장치는 해당 항공기가 25조 121(b)항의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수준까지 연료를 버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15분 이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