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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의 조건

체육...?! 2015. 4. 6. 01:42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농구가 모비스의 3연속 우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즌을 끝으로 각 팀에서 뛰던 외국인 선수는 모두 계약 해지. 다음 시즌 다시 국내팀에서 자신을 뽑아 주길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이런 제도를 만든 KBL에 대한 팬들의 원성이 자자하지만, 일단 이 제도는 다음 시즌에 그대로 적용이 될 모양입니다.

  새로 외국인 선수를 뽑아야 하는 각 팀의 감독들은 어떤 외국인 선수를 원할까요. 챔피언결정전이 벌어지고 있던 중 유재학 감독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현재 10개 구단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데리고 오고 싶은 선수는 누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유재학 감독이 다른 감독의 생각까지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다른 감독들의 생각도 대체로 비슷하다는 얘기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유재학 감독이 망설임 없이 고른 1순위 선수는 자신이 직접 뽑고 3년을 키워 온 리카르도 라틀리프였습니다. 등록선수 중 득점 2위, 리바운드 1위, 블록 1위. 빼놓을 것 없는 선수입니다. 하지만 유재학 감독이 라틀리프를 선택한 이유는 이런 스탯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 중에는 '내 실력이 뛰어나니 다른 선수들이 나에게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선수가 적지 않다. 소위 '갑질'을 하려 하는 것이다. (갑의 의미를) 아무리 양보해도 외국인 선수는 갑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라틀리프를 3년 데리고 있으면서 그가 갑질을 하려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유재학 감독이 기억하는 라틀리프의 1년차 성적은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2012-2013 시즌 리바운드 4위, 블록 4위 등 성적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기복이 심했다는 겁니다. "성격이 소심하다보니 경기 초반에 자신의 플레이가 나오지 않으면 급격히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유재학 감독은 회상했습니다. 2년 차인 2013-2014 시즌에는 첫 해보다 성적이 더 나빴습니다. 그런 라틀리프를 유재학 감독이 3년이나 끌고 온 건 라틀리프가 철저하게 '외인 용병'이 아닌 모비스의 선수로 3년 간 뛰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모비스에서 뛰면서 라틀리프는 기복도 점차 줄어들고 '더 나은' 선수로 한 걸음 올라섰습니다.

 

모비스의 두 외인선수 라틀리프와 클라크. 라틀리프는 정규시즌 중 팀의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자 장염까지 참아가며 코트에 나서겠다고 할 정도팀을 앞세우는 선수입니다. 클라크 역시 라틀리프에 밀린 '식스맨'으로 출전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외국인 선수는 자신의 출전 시간과 활약상에 매우 민감합니다.) 불평 없이 훈련과 경기에 최선을 다 했다는 평가받고 있습니다.

 

  라틀리프가 노력한 것은 코트 안에서만이 아니었습니다.

  4강전이 끝난 다음 날인 3월 27일 밤, 유 감독은 라틀리프에게 수십만 원 짜리 고급 구두를 선물받았습니다. 라틀리프가 새로 태어난 자신의 딸을 보고 오면서 유 감독의 생일이 3월 20일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생일 선물을 준 겁니다. (라틀리프는 3월 17일에 한국에서 함께 사는 여자친구가 자신의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4강전을 치르는 중이라 딸을 보러 갈 수 없었습니다. 자신에게 신생아 딸의 사진까지 보여주며 매우 기뻐한 라틀리프에게 유 감독은 챔프전 진출이 결정된 26일 '특박'을 선물했고, 라틀리프는 이 '특박'에서 복귀하면서 유 감독의 선물을 챙겨왔습니다.)

  유 감독의 휴가가 고마워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라틀리프는 5차전이 끝난 직후 심야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가 딸을 만나고 다음날 저녁까지 울산으로 돌아오기 위해 바삐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런 중에 감독의 생일을 기억하고 딸 얼굴 볼 시간을 줄여가며 굳이 백화점에 들러 선물을 골랐다는 겁니다. 모든 걸 차치하고, 일단 외인 선수가 (그것도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 없는 선수가) 감독에게 그런 선물을 하는 경우는 다른 모든 종목을 통틀어도 찾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결국 라틀리프가 유 감독의 눈에 든 것은 '자신이 뛰고 있는 팀에 대한 예의'를 최고로 갖췄기 때문입니다.

  그럼 다른 종목, 다른 감독들은 어떨까요. 제 겨울스포츠 담당이 농구여서, 그리고 제 취재 경력이 한 시즌도 채 되지 않아 저는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제 선배와 동료들이 쓴 다른 기사들을 보시면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역시 시몬… ‘레오 천하’ 끝장냈다

[광화문에서/이현두]용병과 팀원

  두 번째 기사 말미에 있지만 LG에서 뛰었던 제퍼슨은 완전히 반대되는 사례로 결국 한국과 악연을 맺고 떠나게 됐습니다. 이런 사례는 2014시즌 야구에서도 있습니다.

스캇, 이만수 감독에 “거짓말쟁이” 막말…결국 퇴출

  루크 스캇의 행동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하일성 해설위원을 짧게 인터뷰 할 때 하일성 해설위원이 했던 말이 (인터뷰를 직접 인용하진 못했지만) 기사 말미에 있습니다. "국내 구단과 위원회, 연맹도 외국인 선수를 데려올 때 인성 부분을 최대한 파악하고, 일단 데려왔으면 선수들이 심리적 안정을 찾고 좋은 인성을 보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각 팀 감독들이 외인 선수를 물색하는 그 짧은 시간에 인성까지 모두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용병 영입 제도를 정비하는 위원회, 연맹과 각 구단이 반드시 마음에 새기고 '매의 눈'을 떠야 할 필요는 있을 겁니다. 제퍼슨이 퇴출된 후 모비스를 더욱 거세개 몰아붙인 창원LG와, '좋은 본보기' 선수를 둔 팀인 전자랜드, OK저축은행에 팬들이 보내 준 성원을 보면 답은 분명해 보입니다.

 

Posted by 녹슨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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