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날아오른 비행기는 강릉 하늘을 지나 동해로 날아듭니다. 영화 한 편을 다 볼 시간쯤 지나면 비행기는 어느새 땅이 손에 잡힐 듯 내려가 있을 겁니다. 낮고 완만한 언덕이 듬성듬성 눈에 띄는 들판 위로 가볍게 날아든 비행기는 평소 보던 흰 색 대신 노란 색 페인트로 예쁘게 그려놓은 활주로 위로 가볍게 내려앉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활주로를 노랗게 그릴 수 밖에 없었던 도시.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 정도의 느낌이지만, 일본에서는 인구 수가 많기로 4등이냐 5등이냐를 다투는 도시. 눈의 도시 삿포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행에 작은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중간중간 상자로 정리했습니다.

※여행기간 2016. 2. 23~26.

 

 

'Good·Day·北海道'는 일본 삿포로 관광안내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여행 팁.

공항에 내리시면 곧바로 기차나 버스를 타지 마시고 공항열차 자판기 바로 왼 쪽에 있는 여행정보센터를 들르시기 바랍니다.

삿포로-오타루 기차를 하루 종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오타루 웰컴 패스', 삿포로 지하철 1일 무제한 이용권, 하코타테행 할인 승차권 등 유용한 여러가지 승차권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BGM정보 : 브금저장소

(역시 눈 사진에는 이 음악을 들어 줘야 합니다...)

 

 

삿포로 관문인 치토세 공항에서 삿포로 역까지는 쾌속 열차로 40분 정도 걸립니다. 아침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대부분이니, 출발 전이나 기내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시면 삿포로 역에 도착할 때 쯤 조금 늦은 점심을 드실 수 있겠네요. 그래도 일단 짐은 푸셔야죠. 겨울이면 눈이 쌓여 녹지 않는 삿포로에서는 무거운 짐을 들고 돌아다니기는 조금 불편할 수 있습니다.

 

숙소를 찾으실 땐 딱 한 가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찾는 숙소의 동서남북 숫자가 몇이냐.

 

 

 

 

삿포로의 모든 주소는 남X동X, 북O서O 하는 식으로 번호가 메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주소도 이를 기준으로 매겨집니다. 복잡한 도로명 등이 써 있기도 하지만 주소엔 항상 저 동서남북 번호가 써 있으니 그걸 기준으로 찾아가시면 그리 헤매지 않고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소복하다 못해 질리도록 쌓인 눈길을 걸으면서, 횡단보도 신호등에 파란 불이 켜지면 들리는 시각장애인 안내음인 '삐약삐약(?)' 소리를 몇 번 들으시면서,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하시기 바랍니다.

 

여행 팁.

-삿포로역 근처에 숙소를 잡고 동선을 짧게 하고 싶으시다면 북3서3 근처의 숙소를,

-밤에 맛집을 찾아보고 현지의 밤거리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면 남3서3 근처 '스스키노역'과 가까운 숙소를!

 

삿포로는 넓은 도시는 아니지만 오가다보면 생각보다 제법 많이 걷게 됩니다. 한국에 비해 비싼 전철요금 때문에 걸어다니는 사람도 많고요. 걸어다닐 만은 하지만 동선을 줄여서 피로를 덜고 싶으신 분은 숙소 위치에 신경 쓰시는 것이 좋습니다. 삿포로TV타워를 중심으로 밤거리를 즐기시려면 남쪽, 역 가까이 묵어서 이동거리를 줄이시려면 북쪽에 있는 숙소를 선택하세요. (둘 다 서쪽입니다. 동쪽으로 가서 숙소 잡으실 일은 많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짐을 풀고 나오셨다면 이제 점심을 드시러 가실 차례입니다. 일본 하면 라멘이 떠오르고, 삿포로에서 라멘 하면 일단 미소(된장)라멘을 꼽습니다. 뭐 이런저런 책이나 만화 등을 보다 보면, 삿포로의 원조 라면은 소유(간장)라멘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아무튼 주를 이루는 건 미소라멘입니다. 골목골목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라멘집이 있으니 당기는 곳으로 들어가 보시고요, 고르기 어렵다거나, 혹 삿포로역 가까이 숙소를 잡으셨다면 삿포로역 바로 옆 쇼핑센터 10층으로 올라가 보세요. 10여 개 라멘 집들이 푸드코트처럼 늘어서서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 800~1000엔 안팎. 우리 돈으로 9000~12000원 사이니 그다지 싼 가격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법 푸짐하게 나오는 라멘에 저는 만족했습니다.

 

 

 

 

듬뿍 들어간 달걀, 고기, 각종 건더기와 면을 먹고 국물까지 후루룩 먹고 나면 제법 배부릅니다. 뭣보다 삿포로 라면, 기름기가 제법 있습니다. 추운 곳이다보니 높은 열량 음식을 잘 먹기 때문인지, 국물이 식지 않게 하려고 기름을 많이 쓴 건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다 먹고 나면 느끼해요. 멀리까지 갔으니 칼로리 생각 안 하고 드셔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돌아다녀 보세요.

 

점심을 든든히 드셨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구경을 시작해 볼까요? 첫 날, 숙소 찾느라 조금 헤매고, 점심을 먹고 휴대전화 인터넷까지 해결하고 나니 시간은 어느 덧 3시를 넘어섰습니다. 아무 계획 없이 왔으니, 일정을 짜야 합니다. 저는 첫 날 삿포로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수시로 이런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삿포로의 날씨는 '오늘은 맑음', '오늘은 눈'이 아닌 모양입니다. 파란 하늘에 해가 떴다가도 어느 샌가 구름이 몰려들고 펑펑 눈이 쏟아집니다. 변덕스럽다면 변덕스러운 날씨가 하루 종일 계속됩니다. 제가 머물던 3박 4일동안 내내 그랬으니 날씨가 이상한 것만은 아닐 겁니다.

 

돌아다닌 날 기온은 대충 영하 8~10도. 우리나라라면 혹한일 날씨이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크게 추워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잔뜩 멋 낸 여성들은 목도리 같은 것 없어도 가벼운 겨울코트 정도 걸치면 충분한 듯 싶고요,

 

 

 

 

심지어 학생들은 짧은 교복치마에 맨다리를 내 놓고 다니는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남자들은 외투 없이 양복만 입고 다니는 모습도 심심찮게 봤습니다.

우산도 잘 쓰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밖에서 돌아다니면 눈이 옷에 떨어져도 녹지 않기 때문에 툭툭 털어버릴 수 있어서입니다. 뒤로 매는 가방을 매고 돌아다니신다면, 중간중간 가방을 확인해 주셔야 할 겁니다. 눈이 수북이 쌓여서 한 번씩 털어주셔야 할 테니까요.

 

그래도 우산을 쓰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고 가끔가끔 보이긴 합니다. :)

 

 

 

 

친구인지 자매인지 모를 사람들의 이런 다정한 모습도 보이고요. :)

 

 

 

날이 맑으면 러시아 땅도 볼 수 있는 높은 위도에 위치한 땅 북해도. 해도 당연히 일찍 집니다. 다섯 시만 되어도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해요. 발걸음을 서두를 때가 됐습니다. 유서 깊은 건물이라는 시청 건물도 보시고, 부지런한 분들은 삿포로 대학도 한 번 들러보시면 좋을 겁니다. 길 잃을 걱정을 하지 마시고 마음껏 돌아다니시면서 부지런히 구경하세요. 그러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싶으면 망설이지 마시고 이곳을 찾아오시면 됩니다.

 

 

 

 

삿포로의 중심이자 명물, 삿포로 TV 타워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큰 LED 시계가 걸려 있다고 자랑하는 탑인데, 시계를 보고는 큰 감흥은 들지 않습니다. 다만 이 탑은 삿포로를 여행하시는 데 매우 큰 의미가 될 겁니다. 저 위에서 말씀드린 주소 체계, 동서남북 번호를 메겨 주소를 구분하는 그 원점이 바로 이 TV 타워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탑이 바로 사분면의 원점이 되는 겁니다.

 

시계보다 더 위쪽을 보시면 전망대가 있습니다. 올라가 구경하는 데 700엔이 넘는 가격을 받습니다. 제법 비싸고, 기대를 크게 가지고 올라가시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야경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 번쯤 올라가 보셔도 좋을 겁니다. 삿포로에는 TV타워 전망대와 삿포로역에 있는 JR타워 전망대가 있습니다. 높기는 JR 타워가 더 높다는데, 제가 간 날은 날이 흐려서 높은 곳에 올라가도 그다지 멀리 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삿포로의 중심이라는 TV 타워에 올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서울의 강남보다 더 반듯하게 바둑판처럼 만들어진 계획도시 삿포로의 야경은 이런 모양입니다. 넓고 길게 뻗은 곳은 길이 아니라 '오도리' 공원입니다. 한자로 쓰면 대통(大通)이 됩니다. 이 곳을 중심으로 삿포로 전역이 뻗어 있기 때문에 '널리 통한다'는 의미로 이런 이름이 붙은 건지. 우리나라의 광화문 광장처럼 넓고 긴 광장으로 된 공원인데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길이는 광화문 광장을 압도하지요.

 

겨울에는 눈 축제가 이 곳에서 열리고 여름에는 저녁마다 맥주 광장이 차려집니다. 저는 2008년 여름에도 삿포로를 가 본 적이 있는데, 그 넓은 광장에 길게 테이블이 차려져 있고 사람들이 제법 시원한 여름밤에 맥주를 마시며 즐기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도리 광장에 펼쳐진 거대한 맥주잔칫상(2008년 8월)

 

 

밤이 깊었습니다. 여름은 아니지만 시원한 맥주 한 잔 안 할 수 없습니다. 삿포로에서만 마실 수 있는 맥주가 제가 아는 것만 두 종류가 있거든요. 이 지역 외에는 팔지 않는 지역 한정판 '삿포로 클래식'이 있고, '예비수' 맥주 중에서도 이 지역에서만 파는 한정판이 있습니다. 예비수를 생맥주로 파는 곳은 저는 찾지 못했지만, 삿포로 클래식을 생맥주로 파는 곳을 찾아보세요. 사실 제가 두 번째로 삿포로를 찾은 이유 중에는 그 맥주 맛을 8년 동안 잊지 못했기 때문도 있습니다.

 

이왕 점심을 기름지게 먹은 김에, 저녁도 기름지게 먹어볼까요? 삿포로의 또 다른 명물 '징기스칸'입니다. 1~2명에 하나씩 놓인 불판에 양고기와 야채를 스스로 구워 먹는 '요리 아닌 요리'입니다.

 

 

 

 

징기스칸 요리의 기원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다만 일본이 침략전쟁을 마구 벌일 때 병사들의 겨울 방한복을 만들기 위해 기른 양들을 처리하기 위해 만든 요리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예전에는 키울 만큼 키우고 난 양을 써서 냄새도 제법 심했는데, 요즘은 주로 어린 양고기를 쓰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다고 합니다. 그래도 가게 따라 냄새 차이는 제법 난다고 합니다. 인터넷으로 잘 뒤져보시고 가게를 선택하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여행 팁.

-술과 안주거리를 주로 파는 일본 가게들 중 일부는 기본 찬(양배추를 식초 등에 절인 피클 같은 느낌의 종지 반찬.)을 자릿세 명목으로 팔기도 합니다. 종지 하나당 200엔~300엔 사이로 싼 가격은 아닙니다. 다만 징기스칸처럼 느끼한 안주를 먹는 경우엔 생각보다 입 속으로 쏙쏙 잘 들어가는 안주이긴 합니다. 김치도 팔던데, 더 비쌉니다. 하나 더 시켜서 드실 경우에도 그대로 추가요금을 내야 하니 주의하세요.

 

 

두 시간 비행, 몇 시간 돌아다닌 관광. 일본 여행은 가는 길이 그리 피곤하진 않습니다. 저녁을 먹고 와서도 아쉽다면 뭐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가볍게 한 잔 더 하셔도 되고,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사들고 숙소에서 캔맥주 한 잔 하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일본 편의점은 주전부리가 매우 충실하죠. 몇천 원이면 한국에서 갖추기 힘든 알찬 '집맥' 안주를 갖춰 먹을 수 있습니다.

 

 

 

 

 

그 외 삿포로에서는 '수프 카레'라는 음식을 드실 수 있습니다. 먹었는데 깜빡하고 사진은 찍지 못했습니다. 국처럼 묽게 끓인 커리에 닭고기나 야채, 소고기 등이 메인 요리처럼 담겨 나오는 특이한 요리입니다. 진득한 카레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좀 싫으실 수 있지만, 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가 음식 호불호가 별로 없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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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 밤 푹 주무셨으면, 둘째 날부터는 조금 서두루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특히 겨울에 무수히 쌓인 눈밭을 보기 위해 오셨다면요. 기본적으로 열차나 차를 타고 움직이는 거리가 한두 시간씩 나오는 곳이 많습니다.

 

제가 둘째날 선택한 일정은 후라노와 비에이 등지의 설경이었습니다. 여름에는 라벤더 밭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 넓은 땅이 온통 눈으로 뒤덮인다니. 여행을 가기 직전 한창 머릿속이 복잡할 때여서 흰 눈 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설경을 꼭 보고 싶었습니다.

 

다만 후라노와 비에이는 가는 길이 멀고, 도착해서도 교통편을 따로 구하기가 좀 애매합니다. 여름이면 덥지 않은 날씨에 자전거로 여행하기 딱 좋은 곳입니다. 실제로 2008년에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했습니다.

 

다만 겨울에는 여기저기 구경하기 위해 가장 좋은 수단이 관광 택시를 빌리는 겁니다. 그런데 좀.. 비쌉니다. 보통 뭐 1시간~1시간 반에 몇 천 엔 수준입니다. 혼자서 타기엔 제법 비싸고, 최대 인원인 4명이서 타더라도 싸진 않습니다.

 

출발 전 잠시 고민하다 제가 선택한 방법은 당일 패키지였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홋카이도 내비'라는 카페에서 운영하는 1일 후라노 비에이 투어 프로그램인데, 결론적으로는 제법 알차고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빠듯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얼굴도장 찍기 식의 패키지는 아니었고, 원하는 눈밭을 실컷 보고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있었습니다.

 

여행 팁.

한겨울 눈이 쌓인 후라노-비에이를 여행하실 땐 꼭 방수가 되는 방한 신발을 신으세요. 발목을 완전히 덮는 것이 좋습니다. 겨울철 신는 등산화 정도면 제일 좋습니다. 일반 운동화는 동상 걸리기 딱 좋습니다. 구두 등은 절대 금물!

(제가 갔던 투어는 발목~무릎까지 덮는 발토시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개별적으로 여행하실 분들은 이것도 챙기시는 걸 아주 많이 추천합니다.)

 

 

직접 돌아다닌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후라노와 비에이는 설명드릴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사진 여러 장을 한꺼번에 보여드리면 아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시지 않을까 합니다.

  

 

 

 

 

 

 

 

 

 

 

 

 

눈밭은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시선을 따라 보내면 하늘과 만나고 밟고 들어가면 허리를 감쌉니다. 누구도 밟지 않아 처녀지가 된 땅에 첫 발자국을 남기는 건 아마 사람이 아닌 여우일 겁니다. 함께 왔지만 잠시 혼자 아무도 밟지 않은 새 눈을 보고 싶으면 그냥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면 됩니다. 북해도의 눈밭 여행은 그런 느낌입니다. 혼자 여행해도 혼자이고, 함께 여행해도 혼자입니다.

 

 

삿포로 날씨는 파란 하늘이 보이고 맑다가도 순식간에 눈이 오는 날씨로 바뀐다고 말씀드렸죠? 그러다보니 이렇게 하늘이 파랗던 날씨가,

 

 

 

이렇게 구름이 슥 몰려오더니,

 

 

 

 

순식간에 이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눈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나무를 향해 걸어간 여우 발자국이 보이시나요. :)

 

후라노와 비에이의 겨울 풍경은 이런 모습들입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하얀 설원 한 가운데 외롭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아니면 몇 그루들. 눈발까지 굵어지면 발 바로 앞이 푹 꺼진 땅인지 평지인지도 잘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온 세상이 무채색이 되는 진기한 풍경을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는 곳이 이 곳입니다.

 

후라노, 비에이는 대부분이 사유지인 밭입니다. 주로 감자 같은 걸 재배한다고 하니, 땅이 그리 비옥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그 넓은 땅에 나무 한 그루 없어서, 겨울에는 이렇게 꽤나 황량한 풍경을 보여줍니다.

 

 

 

삿포로를 여행지로 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최근 마음이 제법 번잡해서 정리가 되지 않고, 그만큼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제법 허하고 외로운 풍경이 필요했고, 한숨 크게 쉴 수 있는 풍경이 필요했고, 머릿 속 복잡한 생각들을 모두 지워주는 풍경이 필요했는데, 후라노-비에이는 그런 조건들을 참으로 훌륭하게 만족시켜 줬습니다. 눈 쌓인 풍경은 많이 볼 수 있겠지만, 이렇게 세상이 무채색으로 보이는 풍경은 다른 곳에서 보기 쉽지 않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무리 큰 한숨도 눈 속으로 파묻어버릴 수 있는 곳이 이 곳이었습니다.

 

 

 

 

하나 아쉬웠던 것은 그 유명한 관광지에 붙은 이름들입니다. 넓은 밭에 나무 한 그루 덜렁 있고, 겨울이 되면 주변에 눈이 키높이로 쌓여 관광지가 되다 보니, 그 멋진 배경에 따라붙는 이야기는 없다 싶을 정도로 적습니다. 나무에 역사나 배경이 그리 많을 리는 없겠지만, 이렇게 보기 좋은 풍경 치고는 좀 아까운 이름들이 많습니다.

 

 

 

이런 풍경을 보여주는 언덕의 이름은 '마일드세븐' 언덕입니다. 왜 마일드세븐인고 하니, 일본 담배 마일드세븐 광고에 실렸던 풍경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겁니다. 후라노와 비에이에는 이런 이름이 붙은 곳이 꽤 많은데, '켄과 메리의 나무(역시 광고에 등장한 나무로 광고의 주인공 이름이 켄과 메리였다고...)', '세븐스타 나무(담배 세븐스타 광고에 등장한 풍경)', '크리스마스 나무(혼자 덩그러니 있는 위 사진. 나무가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생겨서...)' 등등입니다. 그러고보니 이런 풍경들이 있는 거리 이름도 '패치 로드'라고 했습니다. 뭐, 논밭이 네모져 있다 보니 하늘에서 보면 '패치(반창고)'를 붙인 것 같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나요...

 

그래도 그나마 상업성 없는 이름을 가진 나무가 있습니다.

 

 

'친자 나무.' 일본에서는 '오야꼬' 나무라고 부른답니다. 부모자식을 뜻하는 단어라네요. 큰 나무 두 그루 가운데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모양이 부모 자식을 연상시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자식 나무'는 보이지 않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안 보이나 했더니, 지난 여름에 태풍이 심하게 불어와 자식 나무가 부러져버렸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삿포로는 좀처럼 태풍 피해를 받지 않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모처럼 온 태풍 한 번에 자식을 잃은 모양입니다. 다시 자라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텐데, 그동안 이 장소는 어떻게 마케팅을 해 나가야 할까요.

 

...

 

 

얘기가 잠시 딴 길로 샜습니다. 여정으로 돌아오죠. 저는 후라노-비에이에 황량한 눈 풍경을 보러 갔습니다만, 모두 그런 건 아니겠죠. 누군가는 눈을 펄펄 날리면서 놀아보고도 싶고, 누군가는 눈에 푹 파묻혀 예쁜 사진도 찍고 싶었을 겁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후라노-비에이는 당일 패키지를 이용했고, 10명~20명 정도가 한 그룹으로 움직였습니다. 50대 아주머니부터 20대 대학생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는데, 어르신들이야 그렇다 치고 20대 혈기왕성한 대학생들은 그런 곳에 가면 목적이 또 하나 생기겠죠. 그러다보니 여행을 시작하고 두어 시간만 지나면 이런 풍경이 자주 눈에 띕니다. 모두 훈남훈녀였고, 나중에 보니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계시던데 이 분들 지금 서로 연락은 하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

 

 

 

나무 몇 그루만 서 있으면, 잔뜩 쌓인 눈과 어울려 절경을 보여주다보니, 취미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일본 사람이나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요.

 

 

 

 

 

들판과 산을 실컷 구경하면서 다니다 보면 어느새 여행길은 산 속으로 향합니다. 중간에 예쁘게 꾸며진 약수터에서 물도 한 잔 들이켜보고요.

 

 

 

 

산 위로 위로 올라가다보면, 어느덧 일본에서 꼭 한 번은 해 보아야 한다는 온천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함박눈이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노천탕에 앉아 있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좋더군요.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게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눈을 보면서도 미처 씻겨내려가지 않던 잡생각들이 온천에 앉아 함박눈을 바라보며 비로소 씻겨내려갔던 것 같습니다. 삿포로는 온천으로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가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하는 만큼, 어디서든 기본적인 온천은 나오는 모양입니다. 산에서 솟아나와 계곡으로 빠져들어가는 온천물은 안에 들어가 있는 각종 성분 덕에 말 그대로 옥빛으로 흘러갑니다.

 

 

 

 

사실 귀찮아서, 온천 할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해 보면 그 가치를 압니다. 일본 여행의 즐거움이 세 개가 있다면 그 중 하나는 먹는 것, 또 하나는 온천일 겁니다. 영하 10도 혹한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그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그 여유를 꼭 즐겨보셨으면 합니다.

 

여행 팁.

(제가 간 온천에 한정된 건지 모르겠지만) 일본 온천은 우리나라처럼 수건을 그냥 제공해주지 않았습니다. 온천을 계획하고 계시다면 수건을 한 장 따로 챙겨주세요. 가지고 오지 않으셨으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200~300엔 정도이지만, 저는 너무 얇아서 불편했습니다.

샴푸 등에 민감한 분들은 본인이 쓰던 샤워도구를 꼭 가져가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온천에 있는 일본 샴푸와 비누...뭔가 잘 안 맞았습니다.

 

 

온천에 가야 하는 이유 하나 더. 따뜻한 물에 피로를 푼 후 한밤 중 눈쌓인 산길을 조심조심 돌아오다보면 정말 여우같은 녀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우 '같은' 녀석은 아니고 정말 여우입니다 :)

 

 

 

안내하던 가이드분의 말. "저 녀석이 얼마나 여우짓을 하는지 아세요? 처음 봤을 때 다리를 다쳐서 차 앞을 절뚝거리면서 가고 있길래 안쓰러워서 먹을 걸 던져 줬더니 며칠 뒤부턴 새끼들을 끌고 나오더라고요. 같이 먹을 걸 챙겨 줬더니 새끼들이 독립한 다음에도 계속 같은 길에서 기다리길래, 한 번은 외면하고 먹이를 챙겨주지 않았거든요.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 쟤가 다치지도 않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서성거리는 거 있죠."

 

 

 

한겨울 눈 밭을 헤매는 여우를 마지막으로 이틀째 여정이 끝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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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입니다. 눈을 보고, 온천도 했고, 여우도 보고, 후라노-비에이 투어에서 만난 마음 맞는 분들과 가볍게 즐겁게 저녁 겸 술 한 잔 하신 다음날. 조금 늦게 일어나도 상관 없을 겁니다. 오늘은 그 유명한 오타루 운하를 보러 가는 날입니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따뜻하게 챙겨 입고 삿포로 역으로 갑니다. 오타루로 가는 열차는 수시로 있고, 정차역이 가장 적은 쾌속은 40분 안쪽, 완행을 타도 1시간이면 도착합니다.

 

여행 팁.

오타루 행 열차를 탈 때는 오른쪽 창가에 앉는 걸 추천합니다. 오타루행 철도는 해안가 철도입니다. 함박눈이 내리는 (혹은 세상 온통 눈에 덮여 있는) 풍경에서 파도가 치는 파란 바다를 보시려면, 열차 진행 방향 기준 오른쪽 창가에 앉으세요.

 

 

 

전형적인 오타루 골목 풍경을 보고 싶다면 미나미(南)오타루 역에서 내리셔서 슬슬 걸어가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오타루 역에서 내리셔도 이 쪽으로 오시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 기차역이라곤 하지만 우리나라의 지하철 두 역 정도 거리입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어 다 왔네?'라고 말하게 되는 그런 정도의 거리입니다.

 

오타루 역에서 시선을 가장 먼저 잡아끈 건 철도 건널목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대도시에서는 제법 보기 힘들어진 풍경이지만, 일본에서는 철도건널목의 종소리가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에서 한 번 정도는 꼭 나올 정도로 흔한 풍경인 모양입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씨에서 기차역 사진을 꼭 한 번 찍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소원을 풀었습니다.

 

철도 건널목이 있고 육교가 있고 가정집이 있는 오타루는, 인터넷이나 관광 정보에서 보여졌던 '관광지 오타루'에 비해 꽤 차분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집 앞에 쌓이는 눈을 연신 퍼내던 한 청년의 모습도 '조용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후라노-비에이에서 마음이 착 가라앉는 걸 느꼈다면, 오타루 주택가에서는 마음이 '진정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어떤 오후 저런 집 창가에서 눈 오는 걸 바라보며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면 어떨까.

 

 

 

 

골목을 돌아다니고, 집을 구경하고, 그 집의 사람 구경을 하다 생긴 만족스러운 취미(?)가 있습니다. 아기와 함께 걷는 엄마의 사진을 우연히 찍게 됐는데, 잘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참 만족스러운 사진이 됐습니다. 앞으로 여행 갈 때마다 이런 사진 한 장씩을 찍어 봐야겠구나 라고 생각했으니까요. :)

 

 

 

 

육교 위에서 뭔가를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던 아기. 그리고 그런 아기가 손을 다 흔들 때까지 기다려주던 엄마. 손을 다 흔든 아기는 당연하다는 듯 엄마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 걸어갑니다. 엄마는 살짝 허리를 숙이고, 아이를 쳐다보며, 속도와 발걸음을 맞춰 걸어 줍니다.

 

문득 아이는 한동안 어딜 보고 손을 흔들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아이와 엄마가 지나간 뒤 손을 흔들던 자리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 봤더니 이런 곳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택가를 따라 한참을 내려오다보면 들르게 되는 곳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오타루 오르골당입니다. 고풍스런 건물에 제법 넓은 실내엔 크고작은 오르골들이 엄청나게 많이 늘어서 있고, 그만큼 사람도 많이 왔다갔다 합니다.

 

 

 

 

아주 작은 자기로 빚은 고양이 오르골부터 인형 오르골, 주먹만 한 오르골,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보석함 오르골까지. 만들 수 있는 모든 형태로 오르골을 구경하고, 들어보고, 예쁘면 살 수 있습니다.

 

 

 

 

 

 

예쁜 장식품들이 많다보니, 굳이 사지 않더라도 여기저기 사진 찍는 재미있는 모습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오르골당부터 오타루역까지 가는 길에는 과자,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가 늘어서 있습니다.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늘어선 좁은 골목에 모여든 사람 구경이 재미있는 곳입니다. 구경할 만 한 가게들이 많다보니 주로 골목길로 사람들이 다니는데, 큰 길로 쑥 나와보면 이런 운치있는 눈길도 눈에 들어옵니다. 하긴 깨끗한 눈 쌓인 길 어디가 운치있지 않겠냐만은요.

 

 

 

 지나가다 가게가 예뻐 보이면 들어가고, 맛있어 보이면 들어가고. 그러면서 즐겨보시면 됩니다. 한참을 구경하면서 걷다보면 어느새 오타루역 가까이 와 있을 겁니다. 주위를 잘 둘러보면 지도를 든 사람들이 꽤 많이 보입니다. 작은 도시 오타루는 해외여행온 외지인뿐만 아니라 일본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인 관광지인 모양입니다.

 

 

 

 

 

 

한창 한창 가다 보면 어느새 해가 어둑어둑 져 가고, 배도 슬슬 고파집니다. 자 이제 오타루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초밥을 드실 차례입니다.

 

 

 

 

어둑해진 해를 따라 초밥집이 늘어선 골목인 '스시야도리'를 찾아가는 길에 이런 집을 발견합니다. 찌개집. 단순하고 명료해서 좋은 이름입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일본 사람이 하는 한국식 찌개를 파는 가게라고 합니다. 제가 갔을 때는 문을 닫았었는지 불빛이 새나오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또 다시 오타루를 가 보게 된다면 한 번 가 보고 싶은 곳입니다.

 

찌개집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초밥 가게들이 늘어선 골목에 다다릅니다. 제가 갔을 때 시간이 오후 6시 즘. 보통은 줄을 늘어서서 많이 기다려야 한다는데, 제가 간 날은 무슨 일인지 어떤 초밥집에도 사람을 보기 힘들었습니다. 사람이 늘어선 초밥집이 있으면 '맛있으니까 기다리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줄을 보태거나, 아니면 '편하게 먹자'라고 생각해 사람이 없는 가게를 찾아 갈 텐데 너무 사람이 없으니 민망했습니다. 초밥 거리를 두 번 정도 왕복한 후 제일 소박해 보이는 가게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보니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게도 제법 잘 알려진 가게였습니다. 뭣보다, 손으로 직접 쓰고 그림까지 그려놓은 메뉴판이 인기인 가게였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직접 그렸다네요. 가게는 다른 종업원 없이 주인 할아버지 한 분이 알차게 깔끔하게 꾸려 나가는 가게였습니다.

 

너무 비싼 초밥을 먹기에도 좀 그래서, 그리 비싸지 않은 초밥 1인분을 주문했습니다. 따뜻한 물수건을 대접하고, 따뜻한 차도 대접한 주인 할아버지는 주방으로 들어가 리듬감 있게, 알찬 손놀림으로 접시에 초밥을 하나 하나씩 늘려갔습니다.

 

 

 

 

솔직히 말해, 초밥 맛이 우리나라와 확실히 달랐냐 하면 그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참 맛있었다고 느낀 건, 운치 있는 가게 분위기였습니다. 나무로 둘러싸인 가게 내부에 깔끔하게 식기와 조리 기구가 정돈돼 있고, 주인은 친절하게 손님을 맞은 후 정성스럽고 깔끔하게 간결한 한 상을 준비해 올립니다. 가게엔 아무도 없이 저 혼자 있었고, 주인 할아버지는 소리라도 들릴까 조심조심 식기를 닦고 다른 손님을 맞을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호텔에서 인터넷으로 열심히 찾고 외운 일본어로 "참 맛있습니다"라고 했더니 깊이 머리 숙여 인사하며 "감사합니다"라고 답한 뒤에야 주인 할아버지는 말을 조금씩 걸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말을 모르는 초밥 가게 주인과 일본말을 모르는 낯선 여행객. 그래도 대화는 20분간 이어졌습니다. 별 내용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오타루 춥지 않습니까?" "조금 춥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어디에서 주무시나요?" "삿포로 호텔에 있었습니다." "오타루에선 주무시지 않나요?" "(다음엔 꼭 그렇게 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 네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런 대화들이 오갔습니다. 가게에서 마음대로 사진을 찍는 것도 결례라고 생각해 조심스럽게 "사진 좀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사진 괜찮습니다"라며 "다른 사람들은 여기저기 많이 찍어 갔다"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일본어는 거의 못 알아들었지만, 손짓과 표정으로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시간은 일곱시 쯤. 이제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즐길 시간이 됐습니다. 밤에 봐야 멋지다는 오타루 운하를 보러 왔습니다. 초밥 골목에서 그저 내리막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청계천만큼 길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야경을 즐기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과 술 한 잔 걸치고 운하 갓길을 걷는 현지인들로 북적였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여정, 오타루 운하의 야경입니다.

 

 

 

 

 

오타루의 차분한 야경과 함께 3박 4일 간 짧은 삿포로 여행도 끝이 납니다. 여름 한 번 겨울 한 번. 해외여행으로 같은 곳을 두 번 간 건 북해도가 처음입니다. 여름과 겨울이 그만큼 다른 경치를 보여주는 곳도 더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두 번 갔지만 아직 한 번 더 가야 할 이유가 남았습니다. 북해도의 가을 경치는 또 그렇게 알록달록하고 멋지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초록인 여름과, 온 세상이 무채색인 겨울을 봤습니다. 이제 언젠가는 온 세상이 알록달록 물드는 가을을 보기 위해 북해도를 한 번 더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원래 눈밭에서 느꼈던 감정처럼 차분한 여행기를 쓰고 싶었는데, 제 생각과는 180도 다른 글이 돼 버렸습니다. 좀 유치하고 좀 식상하고 좀 오글립니다. 그래도 블로그 글이니 스트레스 받고 쓰지 않으려 합니다. 무엇보다, 발길 닿는대로 간 여행이니 글도 손가락 가는 대로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언제부턴가 들었습니다. 지금도 마음이 좀 허해지거다 답답해지면 하얀 눈밭 사진을 열어보곤 합니다. 가기 전 망설여지는 여행은 있어도, 다녀와서 후회되는 여행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여행은 아쉽기는 할 지언정 말이지요. 이번 여행에서 마음 한 소쿠리를 탁탁 털어내고, 또 다른 한 소쿠리를 가득 채워 왔습니다. 글을 읽으신 여러분도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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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녹슨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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