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에서 착륙 중 사고가 난 아시아나항공 A320-232 HL7762 항공기(출처 flightAware)


  14일 밤 6시 50분. 승무원 8명과 승객 74여 명을 태운 아시아나 162편이 인천공항을 이륙했습니다. 경기도와 강원도를 동쪽으로 가로지른 OZ162편은 강릉시를 조금 못 미쳐 기수를 남동쪽으로 돌린 뒤 고도 1만80미터(3만3000피트), 시속 800km(430kt)로 날아갔습니다. 이륙 약 50분 뒤인 7시 40분쯤 고도를 낮추고 착륙 절차를 시작한 OZ162편은 약 30분쯤 후 활주로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OZ162편의 항로. 여기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반 바퀴를 돌았다고 하니 작은 사고는 아니었습니다. 사망자나 중상자가 없었던 게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출처 로이터


  기사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몇몇 보도를 보니 통상 쓰는 활주로가 아닌 다른 활주로를 이용해서 그랬다는 기사 등등 조종사에 대한 기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좀 의아했습니다. 히로시마에 정기편을 운항하는 아시아나항공이 그 정도로 숙달되지 않은 조종사를 보냈을까. 지금 상황에서 접근할 수 있는 정보만으로 단편적인 부분을 좀 살펴봤습니다.


1. "왜인지 모를 활주로 변경"?

  조종사 기량 미달은 항공사고가 터질 때마다 추정으로 나오는 원인입니다. 특히 이번 사고에서는 △비행기가 통상 사용하는 활주로가 아닌 반대편 활주로를 사용했고, △해당 활주로에는 정밀접근유도장치(ILS)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조종사의 훈련 미숙 같은 의혹이 기사에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반대편 활주로로 착륙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어 보입니다. 특히 히로시마에 정기편을 투입해 온 아시아나 조종사들이라면 더욱 말이죠.

  먼저 위에 링크한 기사 중 OZ162편이 "무슨 이유인지 동쪽에서 진입하는 바람에 계기착륙장치가 대응하지 못했다"는 부분은 항공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말한 걸로 보입니다. 이유는

1. OZ162편 착륙 당시 바람 방향이 서에서 동으로 불었고

   -> 비행기는 바람을 마주보고 착륙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동에서 서로 착륙해야 합니다.

2. 지상의 항법장비 도움 없이도 항공기에 설치된 자동비행 시스템의 도움을 일부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비행기가 착륙할 당시의 날씨입니다. FlightAware 같은 비행 궤적 추적 사이트 정보를 보면 OZ162편이 착륙한 시각은 우리 시각으로 8시 10분이 조금 안 된 때입니다. 먼저 이 때의 날씨를 보면


히로시마 공항의 기상정보 트위터.

  이 중 비행기 착륙 시간과 가장 가까운 기상정보는 맨 아래 것입니다. 복잡한데 조금 뜯어보면 이렇습니다.


RJOA - 히로시마 공항 국제상업항공기구(ICAO) 식별부호

141100Z - 14일 UTC11:00 즉 한국표준시로는 20:00시가 됩니다.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한 시간은 20:04~20:05 정도로 검색됩니다.)

VRB02KT - 02KT는 바람의 세기가 시속 2노트라는 뜻이고 VRB는 variable의 약자입니다. 즉 바람의 방향이 변화무쌍해 어디라고 지정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6000 - 공항의 시계가 6000m 수준.

SHRA - Light shower of rain. 심하지 않은 소낙성 비가 내리고 있음.

PRFG - Partial Fog. 공항의 일부가 안개에 덮여 보이지 않음.

FEW000 - FEW는 few cloud. 구름 약간. 000은 구름의 고도입니다. 즉 구름이 지표면에 덮여 있다는 뜻입니다. 안개겠죠.

  대략 요약하면 이날 히로시마 공항에는 소낙성 비가 내리고 있었고, 바람 방향을 일관성있게 측정하기 어려웠고, 공항은 안개와 구름으로 덮여 공항 일부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뜻입니다.

  다만, 바람의 방향이 변화무쌍했다고 해도, 바람 방향은 전반적으로 서풍 계열(트위터의 210, 150 등의 숫자를 주목하세요.)이 불고 있었습니다. 정서방향은 270, 반대로 정동 방향은 90도입니다. 


서풍 계열의 바람. 181~359도에 해당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관제사는 당연히 동에서 서로 항공기를 착륙시키도록 유도하게 됩니다. 즉 OZ162가 동쪽에서 착륙을 시도한 것은 관제사의 지시를 아주 잘 따른 것이었으며, 안전을 위한 최상의 선택이었다는 뜻이 됩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는 상황이 아니라 당연한 상황입니다.


2. 자동착륙장치가 대응 못 해 수동착륙?  

  몇몇 기사에 나온 대로, 동->서 활주로 방향에는 계기착륙장치(ILS)가 설치돼 있지 않습니다. (서->동 방향 활주로에는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계기착륙장치의 도움이 없어도 OZ162기는 항공기 자체에 설치된 자동조종장치의 도움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물론 '비정밀접근'에 해당하지만 몇몇 기사에 나온 뉘앙스처럼 '조종사가 완전히 수동으로' 착륙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히로시마 공항의 동->서 활주로 착륙 절차


  조종사들이 활용하는 항법 차트입니다. 저 그림은 시뮬레이션용으로 제작된 거지만, 실제와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저 그림 중 표창 모양으로 된 기호들은 모두 비행기 자체의 자동항법장치(RNAV)를 사용해 비행할 수 있는 지점들입니다. 최신 항공기에 히로시마 공항의 ICAO 코드를 입력하고 활주로 번호(위 경우 28)을 입력하면 저 항로와 그에 해당하는 고도가 자동으로 표시되고 ILS가 없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자동비행장치의 도움을 받아 활주로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OZ162 기종인 A320-232는 바로 이 '최신 항공기'에 해당합니다. (아시아나뿐 아니라 저가항공사를 포함해 국내 모든 항공사가 운용하는 모든 항공기는 저 RNAV 기능이 다 장착돼 있습니다.)

  거기에다 착륙 절차를 보면 완전한 직선입니다. 최소 수천 시간의 비행 경력이 있는 민항사 기장이 저런 착륙 절차를 '조종 미숙'으로 실패했다고 단정짓기는 상식적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김포공항의 착륙 절차. ILS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히로시마보다 확실히 복잡합니다.

  여담으로, 계기착륙장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라도 조종사들 대부분은 마지막 착륙 절차를 수동으로 시행합니다. 착륙 순간까지 자동착륙을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기계보다는 사람의 판단이 긴급상황에 더 훌륭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3. 그럼에도 신경이 쓰이는 점들.

  그럼에도 찜찜한 부분은 있습니다. 시계가 불량한데도 불구하고 왜 비행기가 저고도로 날아들었나 하는 점입니다.

SHRA-가벼운 소낙성 비 / PRFG-공항 일부를 가린 안개


 위의 기상정보 데이터를 다시 가져와 봤습니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두 시간 전부터 소낙성 비가 내렸고 한시간 반 전부터 안개가 끼어 있었습니다. 활주로는 당연히 많이 젖어 있었을 거고 미끄러웠겠죠. 이런 상황이라면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 조종사들은 착륙 순간에 비행기를 활주로에 조금 세게 '꿍' 하고 내려찍습니다. 바퀴가 땅에 닿는 순간 마찰력을 최대로 활용해서 비행기 속도를 빠르게 줄이고 미끄러지는 것도 피하기 위해서죠. 

(날씨가 궂은 날 비행기를 탔을 때 조종사들이 바닥에 비행기를 세게 찍는 건 절대 조종사 기량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이런걸 펌 랜딩-Firm Landing-이라고 하는데, 비행기에 가해지는 피로도를 최소로 줄이면서 땅에 내리찍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베테랑 조종사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보면 OZ162편은 활주로에 닿기 직전 고도를 규정보다 더 낮췄습니다. 지상 구조물에 비행기가 닿을 정도였다면 당연히 비행기는 활주로에 미끄러지듯 들어갔을 거고 바퀴 마찰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비행기가 눈 위 자동차처럼 제동력을 상실할 확률이 높아지겠죠.

  그렇다면 혹시 지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계가 안 좋아서 조종사가 활주로를 찾기 위해 고도를 낮추진 않았을까. 가능성이 없진 않겠지만 높지도 않아 보입니다. 히로시마 공항의 동->서 활주로 착륙 규정에는 지상 433ft(약 130m)에서 활주로가 보이지 않을 경우 착륙을 포기하고 재상승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빨간 상자 속 괄호 안의 숫자만큼 내려와도 활주로가 안보이면 다시 상승해야 합니다.


  만약 높이 짐작을 못 할 정도로 안개가 짙었다면 조종사가 회항을 결정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든 착륙 시점의 시계는 수치상 6000m 수준이었습니다. 만약 전체 시계는 나쁘지 않은데 유독 활주로 자체의 시계만 나쁘다면 그런 정보는 당연히 위 기상정보에 포함됩니다. 활주로 위의 가시거리를 따로 표현한 기상정보는 RVR(Runway visual range)로 표현됩니다.

  정황상의 문제이지만, 제 생각에는 조종사가 착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리한 착륙을 시도했다고 보기도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착륙 사고가 난 지 2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해당 항공사의 조종사가 그 정도로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했을까요.

  국지성 소나기, 바람의 방향이 빠른 시간에 100도를 넘나들 정도로 바뀌는 상황, 공항을 가릴 정도로 낮게 깔린 안개 등의 상황을 종합하면, 공항 주변으로 속도가 빠른 저기압이 통과했거나 순간적인 하강기류, 돌풍 같은 것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공개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지만, 이번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려면 착륙 시점의 공항 날씨를 아주 미세한 단위로 분석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Posted by 녹슨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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