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한 기사를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올해 열린 ADEX에 참가한 수송기들. 위로부터 A400M, C-130, C-17


한국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특수 설계된 방탄 차량 ‘비스트’를 타고 미군기지를 방문하고 청와대에 들어갔습니다. 이 거대한 대통령 경호 차량은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과 함께 들어오지 않고 방한에 앞서 한국으로 ‘배달’ 됐습니다. 자동차 무게만 6.8t에 이르는 이 자동차를 배달한 비행기는 군용 수송기 C-17입니다.

미국이 공개한 대통령 전용 차량 ‘비스트’ 수송 사진. 자료 : 미국 비밀경호국 트위터


군용기의 꽃은 전투기지만 군에서 묵묵히 일하는 1등 공신을 꼽으라면 단연 수송기입니다. 우리 공군만 해도 지금 이 시각에도 수송기가 이 공항에서 저 공항으로 쉴 새 없이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군 작전뿐만 아니라 재외국민에게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해당 지역으로 급파돼 국민들을 송환하는 역할 등을 다양하게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항공기 제작 업체에서도 더 효율적이고 많은 화물을 실을 수 있는 화물기를 제작해 팔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 운용하고 있는 최고 인기 수송기는 록히드마틴에서 만든 C-130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4년부터 실전 배치되기 시작한 C-130H형을 주로 운용합니다. 총 12대가 도입됐고, 그 중 4대는 길이를 늘린 개량형입니다.

C-130H에서 동체 길이를 늘린 C-130H-30 기종. 자료 : jetphotos.net


무엇보다 이 비행기의 최고 장점은 신뢰성과 확장성입니다. 1954년 첫 실전배치 후 지금까지 63년 동안 쌓아 온 믿음은 다른 기종이 따라올 수 없는 강점입니다. 대한민국 공군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육해공군에서 2500대가 넘는 C-130를 운용해 왔습니다.

다만 이 비행기는 너무 오래됐습니다. 한국에는 1988년 처음 이 비행기가 도입됐습니다. 비행기는 정비만 잘 해도 수십 년을 쓰지만, 그래도 기령이 오래 되다 보니 공군은 한 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고민’의 틈새를 치고 들어온 곳이 바로 유럽의 신흥 강자이면서 최근 우리나라 공군에 공중급유기 A330 MRTT를 납품한 회사인 에어버스 사입니다.

에어버스사는 C-130 기종이 가지지 못한 틈새시장을 철저히 파고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준수한 성능을 가진 비행기를 뽑아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조금 더 큰 몸집에 좀 더 많이 싣고, 좀 더 빨리, 멀리, 편하게 날 수 있도록 만든 비행기입니다. 아래 표를 보시죠.

가장 주목할 만 한 점은 속도와 고도입니다. 두 수송기는 프로펠러로 추진력을 얻는 터보프롭 엔진을 썼습니다. 터보프롭 엔진은 저속에서도 운용 효율이 좋고 단거리 이착륙도 가능한 엔진이지만 비행기 속도를 높이 올리기 어렵습니다. 최근 터보프롭 엔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는 프로펠러 6개를 단 6엽 엔진인데, 이 경우 최고 효율이 마하 0.55 근처에서 나옵니다. 6엽 프로펠러 대신 길이를 늘리고 폭을 줄인 프로펠러 8개를 달면 조금 더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A400M이 바로 8엽 프로펠러 형태입니다.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터보프롭 엔진의 효율성 그래프. 마하 0.55 정도에서 가장 높습니다.
자료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논문, ‘터보프롭 중형항공기용 프로펠러의 특성 연구(2015)’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터보프롭 비행기가 0.7이 넘는 마하 속도로 3만 피트가 넘는 고도에서 나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닙니다. 주변 공기를 끌어모아 압축한 뒤 쏘아내는 터보제트 엔진은 공기가 희박한 높은 고도에서도 잘 날 수 있도록 설계됐지만, 이런 과정 없이 거의 대부분을 프로펠러가 공기를 밀어내는 힘으로 전진하는 터보프롭 엔진은 3만 피트 이상 고도에서 엔진이 제 힘을 내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같은 단점을 에어버스는 어떻게 극복하고 높은 고도를 고속으로 나는 비행기를 만들었을까요. 8200kW에 이르는 고출력 엔진 외에도 에어버스는 “중요한 항공 역학 기술 세 가지를 적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첫 째는 ‘뒤로 누운 날개(swept wing)’입니다. 군 수송기는 대부분 저속에서 안정적으로 날기 위해 날개를 동체에 수직에 가깝게 만들어 붙입니다. 그래야 낮은 속도에서도 잘 날기 때문입니다. 세스나 같은 경비행기 날개도 모두 이렇게 수직으로 일직선에 가깝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A400M은 과감하게 날개를 동체 후방 쪽으로 젖혔습니다. 이렇게 될 수록 비행기가 고속으로 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에어버스는 저고도 저속에서 안정적으로 날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C-17, A400M, C-130의 날개 모양 비교. 왼 쪽으로 갈 수록 날개가 뒤로 당겨져 있고, 그만큼 속도도 빠릅니다. (자료 : beyondthesprues.com)


두 번째는 프로펠러 날개 모양입니다. ‘시미터 프로펠러’라고 부르는 이 프로펠러 모양은 중동에서 쓰던 ‘시미터 칼’ 모양에서 이름을 따 왔습니다. 프로펠러 모양을 굴곡지게 만들어 공기 저항을 최대한 줄이면서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이 같은 프로펠러 모양은 A400M을 포함한 최신 프로펠러 항공기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곡선형 ‘시미터 프로펠러’와 시미터 칼. (자료 : 에어버스, 인터넷 도검 쇼핑몰 캡처)


마지막, 이 프로펠러들은 각각 반대방향으로 회전합니다. 에어버스는 엔진 회전 방향을 이렇게 바꾸어 약 4% 정도 효율을 올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네 개가 각각 대칭 방향으로 회전하는 A400M 엔진 특성.


이 비행기를 지난 ADEX 기간에 실제로 타 보았습니다. 성남공항을 이륙해 대구를 찍고 다시 돌아오는 경로였습니다. 왕복 비행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국내선 여객기와 속도가 크게 차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A400M 언론 시승 행사에서 이 비행기가 날아간 경로.


이륙할 때 몸이 뒤로 쏠리는 느낌이 일반 여객기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가속도가 더 빠르디는 의미겠지요. 영화에 등장하는 군용 수송기는 내부가 어둑어둑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LED 실내등이 곳곳에 부착되어 있어 실내는 비교적 밝았습니다. 물론 창문이 몇 개 없다보니 여객기같은 분위기를 기대할 수는 없겠죠. 실내 소음은 평범한 목소리로 대화가 가능한 정도, 소곤거리며 대화하기는 어렵고, 고함을 칠 필요는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승차감(?) 역시 여객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요.

A400M의 내부 사진.


비행하고 있는 조종석을 견학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이 비행기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조종석입니다. 민항기인 A380 여객기와 거의 비슷한 비행전자장비(Avionics)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군 화물기 조종사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조건입니다. 민항 비행사로 옮길 때 훨씬 편하니까요. 이런 조건 때문에 이 수송기 도입을 은근히 기대하는 조종사도 있다고 합니다.

A400M의 조종석(위)과 A380의 조종석(아래)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료 : 에어버스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정확한 수치를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이 비행기의 유지 비용은 C-130H를 운용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는 비쌉니다. C-130을 운용하다 최근 A400M 기를 4대 도입한 말레이시아 공군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는 자신도 알 수 없다면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쓰던 C-130이 도요타 자동차라면 A400M은 벤츠나 BMW 같은 자동차입니다. 더 최신형이고 좋은 자동차를 타면 드는 돈도 더 많을 수 밖에 없겠죠.” 그 외 국내에서 써 본 적 없는 기종과 엔진(A400M에는 유로프롭社 엔진이 탑재됩니다.)인 만큼 정비의 효율성 같은 점도 고려 대상이 되겠죠.

그럼 그동안 미국 수송기들은 놀고 있었느냐. 물론 아니죠. 전통의 강자 C-130기 역시 최신 전자항법장비를 장착하고 C-130J로 환골탈태했습니다. 모양만 똑같지 다른 비행기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미 공군이 운용하는 C-130J. 우리 공군도 같은 비행기를 가지고 있지만 올해 ADEX에 전시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다소 효율 면에서 밀렸던 4엽 프로펠러 엔진 대신 ‘대세’인 6엽 프로펠러를 장착해 엔진 효율을 높였습니다. C-130H 대비 엔진 추력이 19%(수평비행 기준) 향상됐고 연료는 15% 덜 쓰면서도 순항 속도는 시속 30노트(약 54km) 높아졌습니다. 탑승 인원도 10명 늘려 무장 병력 74명을 태울 수 있게 됐습니다. 계기판이 어지럽게 배치됐던 기존 조종석 대신 최신 글래스 콕핏(디지털 화면이 장착된 조종석)이 적용됐습니다. 승무원 수도 5명에서 3명으로 줄였습니다.

C-130J 조종석(위)와 C-130H 조종석(아래). 자료 : airliners.net


사용자 필요에 맞게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이 비행기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동체를 늘린 동체연장형C-130J-30, 공중급유기 KC-130J, 특수임무기 HC/MC-130J, 민간용 화물기 LM-130J, 해상초계기 SC-130J 등 수요자 요구에 맞게 다양한 변형도 가능합니다. 제작사인 록히드 마틴 측은 “첨단 장비를 사용해 효율은 높이면서도 운용 비용은 절감시켰다”고 자사 제품을 자랑했습니다.

C-130J(위)와 C-130H(아래)의 엔진 프로펠러. 6엽 프로펠러는 정비성, 효율성 등이 좋아 최근 가장 많이 쓰이는 형태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차량 ‘비스트’를 싣고 온 C-17 수송기는 보잉사의 제품입니다. A400M이나 C-130에 비해 엄청나게 큰 덩치와 무지막지한 탑재량, 항속거리를 가진 대형 기종입니다. 6톤이 넘는 자동차 두 대를 가로로 싣고도 공간이 남아 경호 차량까지 함께 실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화물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큰 덩치를 가지고도 이륙하는데 필요한 활주로 길이는 1km가 채 안 됩니다. 이보다 작은 수송기도 더 긴 활주 거리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프로펠러 엔진이 아닌 제트 엔진으로 이런 성능을 만들어낸 건 정말 입 떡 벌어질 일입니다.

C-17 내부. 탑승해 있는 미군 승무원들의 크기로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송기는 투박해 보이지만 전투기만큼의 항공 기술력과 노하우가 집약된 비행기입니다. 무거운 화물을 싣고 가뿐하게 날아갈 수 있는 능력, 10m도 안 되는 낮은 고도에서 비행할 수 있는 능력, 비포장 활주로나 해안가 모래밭에서도 뜨고 내릴 수 있는 능력, 그러면서도 적진 하늘에서 파상공세를 회피할 수 있는 능력 등이 골고루 갖춰지지 않으면 수송기로서는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전투기와 훈련기를 만들었지만, 아직 수송기 같은 대형 기체를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하루 빨리 ‘한국형 수송기’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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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한 기사를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비행기 여행은 설레지만 비좁은 이코노미 좌석에서 몇 시간씩 날아가는 경험은 그리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몸 한 번 뒤척이기도 쉽지 않고, 통로석에 앉지 않았다면 화장실 한 번 가기 위해 곤히 자는 옆 사람을 깨워야 하는 경험 한 번쯤은 해봤을 텐데요. 전 세계 많은 항공사들이 같은 비행기에 조금 더 많이 승객을 태우기 위해 좌석 간격을 좁혀 왔습니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 평균 35인치(약 89cm)이던 이코노미석 앞뒤 간격이 현재는 약 31인치(약 79cm)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좌석의 좌우 폭은 18인치(약 46cm)에서 16.5인치(약 42cm)로 좁아졌습니다.

 

 

지난해 매출 기준 세계 최대 항공사인 아메리칸항공의 이코노미 좌석.
자료 : 아메리칸항공 홈페이지

 

 

중형차인 소나타와 준중형차인 아반떼의 2017년형 축간 거리(앞바퀴와 뒷바퀴의 중심 사이 거리·실내공간 비교의 척도) 차이가 불과 10cm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이코노미석 공간이 얼마나 좁아졌는지 대략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현대자동차 중형차인 소나타와 준중형차 아반떼의 크기 비교.
자료 : 현대자동차 홈페이지

 


이윤을 중시하던 항공사의 이런 행태에 제동이 걸릴 전망입니다. 미국 콜롬비아특별구 연방항소법원이 지난달 말 경 미 연방 항공청(FAA)에 이코노미석 좌석 간격에 대한 적절한 기준을 마련하라고 결정했기 때문이죠. 연방항소법원은 우리의 고등법원에 해당하지만 미국 연방대법원이 1년에 처리하는 민원 건수가 매우 적은 점을 감안해 미국에서는 매우 중한 일이 아닐 경우 항소법원 결정을 사실상 최종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료 : flyersright.org


연방 법원은 미국의 항공 관련 비영리 단체인 ‘플라이어스 라이트(Flyers Rights)’가 낸 청원을 수용했습니다. 이코노미 좌석이 끝을 모르고 좁아지는 걸 막아달라는 내용입니다. 물론 이 단체만 이 같은 주장을 한 것은 아닙니다. 미국 민주당 소속 연방의회 의원인 스티브 코헨 역시 동료 의원들과 함께 FAA가 좌석 간격 기준을 마련하고 항공사들은 좌석 규격을 공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올해 3월 발의했습니다.

시민단체와 국회의 주장을 미국 법원이 수용한 가장 큰 이유는 ‘안전’입니다. 체형은 커졌는데 좌석은 오히려 작아지면서 위험한 상황이 생길 경우 안전하게 탈출하기 어려워졌다는 주장을 받아들였죠. 미국 질병관리본부 통계를 보면 1971년 대비 2002년 미국 성인 키는 남자가 0.5인치, 여자가 0.4인치 커졌습니다. 몸무게는 남자가 8kg, 여자가 9kg 증가했네요.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커진 몸뿐만 아니라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라 불리는 앉은 자세 부동 혈전색전증(다리 혈관 속 피가 응고돼 통증이 생기거나 혈관이 손상되는 질병)이 생기기 쉽다는 건강 이슈도 눈여겨 들여다보았습니다.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동아일보 2004년 11월 22일 기사.

 

 

도화선도 있었습니다. 올해 4월 유나이티드항공이 아시아인 의사를 폭행하고 억지로 끌어내는 등 미국 항공사들이 잇따른 ‘막장 행보’를 보인 점도 법원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습니다. 

 

 

베트남계 미국인을 비행기에서 짐짝처럼 끌어내고 있는 유나이티드항공 관계자.
자료 : 유튜브 영상 캡처·동아일보 DB
 

 

 

FAA는 미국의 항공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미국 내 정부 기관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항공 산업이 워낙 규모가 크고 국제적 영향력이 세다보니 FAA의 결정은 사실상 전 세계 항공업계의 ‘표준’이 되는 경우가 많죠. ‘삼성 갤럭시노트7 사용 규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FAA는 지난해 9월 기내에서 휴대전화에 불이 붙는 사고를 막기 위해 △갤럭시노트7을 기내에서 충전하거나 전원을 켜고 사용하지 말고 △수하물로 이 휴대전화를 부쳐서는 안 된다는 임시 규제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이 규제는 미국에 취항하지 않는 우리나라 항공사 노선에도 적용됐죠. FAA가 “미국에 입항하는 모든 비행기는 FAA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조건을 붙일 경우 피해갈 수 있는 항공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갤럭시노트7 휴대전화를 기내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제한 미연방항공청(FAA)의 발표
자료 : 미연방항공청 홈페이지

 

 

그럼 우리나라 항공사는 이코노미석 간격을 얼마나 넓게 만들어 두었을까요. 양대 풀서비스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33인치 안팎으로 미국보다 넓게 좌석을 만들어 뒀습니다. 항공여행이 고급 여행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보니 국적기는 미국에 비해 좌석도 좀 더 넓고 서비스도 훌륭합니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저가항공사들은 31~32인치가 많습니다. 양대 항공사에 비해 다소 좁네요. 다만 좌우 폭은 대부분 항공사가 19인치 전후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수치는 같은 항공사라도 비행기 기종에 따라 다르고, 같은 기종이라도 좌석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아시아나항공이 A350 항공기에 도입한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 ‘이코노미 스마티움’ 홍보 이미지(위)와 진에어의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 ‘지니 플러스 시트’ 소개 자료.

자료 : 각 항공사 홈페이지

 

 

최근에는 외국 항공사에서 운영하던 ‘프리미엄 이코노미’ 서비스도 국내에 속속 도입되고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도입한 신기종 A350에 ‘이코노미 스마티움’이라는 좌석을 도입했습니다. 일반 이코노미석보다 7~10cm 공간을 넓혀 조금 더 편한 여행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국내 저가항공사로는 유일하게 대형기인 보잉 777기를 가지고 있는 진에어도 이에 앞서 큰 덩치를 이용해 앞쪽 공간에 ‘지니 플러스 시트’라고 불리는 좌석을 팔고 있습니다. 좌우 폭은 그대로지만 앞뒤 간격이 최대 37인치(약 94cm)까지 넓어진 좌석입니다. 다만 개인별로 최대 15만 원은 더 내야 합니다.

 

 

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Main/3/all/20170802/85639652/1#csidx61344894894ccc0a5239ddeb3596e6c

Posted by 녹슨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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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3일.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인천(RKSI)발 톈진(ZBTJ)행 A330-300 대한항공 805편(HL7710)이 비행 중 심한 난기류를 만납니다. 톈진공항을 약 187마일 남겨둔 지점이었습니다. 승객 피해는 없었지만 갤리에서 업무를 보던 객실승무원 2명이 발목 골절, 허리 부상 등 중상을 입는 피해가 났습니다. 예측하지 못한 지점에서 발생하는 난기류, 바로 CAT 때문이었습니다.

 

 

대한항공 HL7710 / 자료 : Planespotters.net

 

 

◆CAT이란?

 

국토해양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조사에서 기장과 부기장은 모두 기류가 안정돼 있었으며, 구름도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예측하지 못했던 난기류로, 이 난기류를 항공기상계에서는 바로 ‘청천난류(晴天暖流)’ 또는 ‘CAT(Clear Air Turbulence)’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난류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합니다. 적란운이 있으면 반드시 난류가 있죠. 일기도 상에 전선면(Front)이 존재해도 인근에서 난류가 발생할 거란 예측이 가능합니다. 지형이 험난한 산악지형일 경우 바람이 산을 맞고 튀어오르고 가라앉는 산악파 때문에 난기류가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청천난류는 이런 요소들이 없이도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우선 위 대한항공 HL7710 승무원들이 난기류를 미리 예측했다면 부상도 없었겠죠. 그럼 청천난류는 예측은 불가능한 걸까요?

 

예측을 하려면 먼저 원인을 살펴봐야겠죠. 기상학에서는 청천난류의 주된 원인으로 켈빈-헬름호르츠 파를 꼽고 있습니다. 켈빈은 화학, 물리학에서 ‘절대온도’를 얘기할 때 쓰이는 Kelvin이고, 헬름호르츠(Helmhortz)는 에너지 보존법칙을 확립한 과학자입니다. 우리에게는 헬름호르츠보다는 그 제자인 헤르츠(Hertz)가 더 익숙하죠.

 

 

(제1대 켈빈 남작 윌리엄 톰슨 경과 헤르만 루트비히 페르디난트 폰 헬름호르츠)

 

 

이름이 어려우니 K-H 파라고 줄여 부르겠습니다. K-H파가 뭘까요. 밀도나 속도가 다른 두 유체의 경계면에서 나타나는 파동입니다. 예를 들어 순항고도의 위쪽, 아래쪽의 공기 속도가 다를 경우 그 경계면에서는 이런 모양의 파동이 생겨납니다.

 

 

K-H파 / 자료 : 워싱턴포스트

 

 

모양을 보면 감이 오시죠? 저 파동 속을 비행하는 항공기는 파동의 모양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겠죠. 이게 바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인 CAT입니다. 실제 2005년 4월 19일 대구공항 상공에서 난기류를 만난 항공기의 고도 변화를 분석해봤더니 수십미터 씩 오르내림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승객들은 “바이킹 타는 기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하고요.

 

 

자료 : 항공기상청보 2008.03

 

 

◆발생 원인

 

그럼 이제 저런 상황이 언제 발생하는지를 상상해 보죠. 자 날씨가 맑네요. 날은 차지만 바람은 별로 없고 햇살은 좋습니다. 지상 수 km까지 이런 안정된 공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항공기가 이륙해서 순항고도 정도 올라갔더니. 거기에 제트기류가 딱 흐르고 있습니다. 한겨울 제트기류가 가장 강할 때는 코어에서 시속 150노트 이상의 제트기류가 흐르기도 합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조건이네요. 두 유체, 즉 공기의 흐름 속도가 다를 때 그 경계면을 따라 K-H 파동이 발생한다. 이게 바로 우리가 얘기하는 CAT가 되는 겁니다. 실제로 항공기상에서 CAT를 유발하는 1번 요소로 꼽는 것이 바로 제트기류입니다.

 

 

2017년 2월 11일 동아시아와 태평양 서부 일대의 제트기류 / 자료 : 기상청

 

 

이런 환경을 보면 CAT 예보가 왜 어려운지도 대략 짐작이 갑니다. 일반적으로 난류 예보는 공기가 수직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기본으로 예측합니다. 적란운(CB)만 봐도 공기의 수직운동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구름이죠. 산에 부딪쳐 발생하는 산악파도 당연히 수직운동이겠죠. 전선(Front) 자체는 공기의 온도 차에 의한 면이긴 하지만 전선면에서 발생하는 CB 등을 생각해보면 역시 수직운동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제트기류는 수평방향 움직임입니다. 길이도 길고 범위도 넓습니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난기류 특성상 언제 어디에서 발생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까지는 이 근처에서 생길 가능성이 높다 정도를 운항승무원들에게 알려주는 정도입니다.

 

 

 

◆발생 빈도

 

그럼 언제 CAT가 많이 발생할까요. 연세대학교 대기과학과에서 쓴 논문을 보면 전체 터뷸런스 발생 횟수는 DJF, 즉 겨울에 가장 많습니다. DJF는 December, January, February의 약자입니다. 겨울철 한반도 상공에 강한 제트기류가 흐르는 점을 감안하면 겨울에 가장 많을 거라는 예측이 가능합니다.

 

 

한국에서 발생한 청천난류 빈도 / 자료 : 연세대학교 대기과학과

 

 

하지만 표를 상세히 보면 좀 달라지는데요, MOG 숫자를 보시면 MAM(눈치채셨겠죠? :), 즉 3~5월 사이가 월등히 많습니다. MOG는 Moderate Or Greater의 약자로, 운항 승무원들이 신경쓸 수준의 터뷸런스를 뜻합니다. Moderate 위로는 Severe, Extreme 등의 등급이 있습니다. 봄철은 한반도의 대기가 불안해지는 시기입니다. 이동성 고기압과 저기압이 수시로 지나가고 봄비도 돌풍도 잦죠. 하지만 아직 여름철에 비해 제트기류는 그 강도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일정 수준 이상의 터뷸런스가 많이 발생하지 않나 싶습니다.

 

논문을 보면 각종 기법과 자료를 이용해 CAT의 발생 확률을 예측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어렵습니다. 유체역학을 공부하지 않은 저는 읽어봐도 잘 모르겠어요. 필요한 것만 보는 걸로 하죠. :)

 

 

 

◆운항승무원 대처

 

자 그럼 시뮬레이션 동호인들의 관심사로 넘어가 봅시다. 승무 중에 갑작스런 난기류를 만나 비행기가 많이 흔들리면 어떡해야 할까요.

 

맨 처음에 언급했던 HL7710 사고경위보고서로 다시 돌아가보죠. 예측 못 한 터뷸런스를 만났을 때 필요한 조치들이 잘 정리돼 있습니다.

 

1. 우선 가장 중요한 건 승객의 안전이죠. SeatBelt Chime 2회 울려줍니다. 2회 차임은 승무원 착석을 포함하는 좌석벨트 착용 표시 알림입니다.

 

 

 

좌석벨트 표시등 / 자료 : 리더스 다이제스트

 

 

2. 속도를 줄입니다. 대한항공의 A330 컴퍼니 스탠더드는 Normal speed에서 280노트로 속도를 줄이도록 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항공기마다, 고도마다, 상황마다 다를 수도 있고요. (실제 기장님들이 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속도를 줄여야 하는 이유는 오버스피드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난기류 안에 비행기가 들어가면 우선 속도가 들쭉날쭉 요동치죠. Normal speed는 오버스피드에 거의 근접한 경우가 많은데, 이러다가 속도가 요동치기 시작하면 기체에 적잖은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현직 A330 운항승무원께서 알려주신 내용을 추가합니다.===


SEVERE TURB 조우시 FL200 이하 240KTS, FL200~FL360 260KTS, 그 이상 MACH 0.78 유지하게 되어있습니다. 본문 말씀대로 OVER SPEED 를 막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STRUCTURAL DAMAGE 방지 목적도 있습니다.


==========================================

 

항공사에 따라서는 단순히 속도를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A/T를 disengage 한 후 N1을 참조로 특정 출력에 맞춰서 스로틀이 마구 오르내리는 것을 방지하도록 스탠더드를 만들기도 합니다.

 

3. 고도를 바꿉니다. ATC의 승인을 받아야 하니 시간이 걸려서 순위가 밀렸지만, 난기류를 빠져나가는 데 가장 효과적인 조치입니다.

 

일반적으로 터뷸런스는 수평 방향으로는 폭이 수십km에 이릅니다. Route Offset만으로 빠져나가기 쉽지 않습니다. 반면 수직 방향으로는 수백m 수준이고, 800m를 웬만하면 넘지 않습니다. 따라서 수평방향 회피보다는 수직방향 회피가 아주 효율적입니다.

 

4. 자 난기류를 빠져나와 안정된 고도로 진입했습니다. 객실 승무원들은 객실을 정리하고 겁에 질린 승객들을 안심시키느라 분주합니다.

 

그럼 운항승무원은? 난기류 빠져나왔다고 끝이 아닙니다. 이제 다른 항공기들에게도 알리고, 터뷸런스 발생 자료를 항공기상청에서 수집해 더 나은 항공기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터뷸런스 정보를 보고할 차례입니다. 이 보고를 ‘PIREP(PIlot REPort)’이라고 부릅니다.

 

 

 

◆PIREP 보고

 

PIREP는 다음과 같은 정보로 이루어집니다.

 

일반/긴급 표시(UA or UUA) - 위치정보(OV) - 시간(TM) - 고도(FL) - 기종(TP)

여기까지가 기본이고 옵션으로

구름양(SK) - 기온(TA) - 풍속(WV) - 난기류(TB) - 결빙(IC) - 특이사항(RM)

등의 정보가 추가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UA /OV YDM 090025 /TM 2120 /FL050 /TP B738 /SK 020BKN040 110OVC /TA -14 /WV 030045 /TB MDT CAT 060-080 /IC LGT RIME 020-040 /RM LGT FZRA INC

 

-UA 상층고도 일반 보고

-OV YDM VOR로부터 090 방향 025NM 거리.

-TM 21:20z

-FL 5000feets

-TP Boeing 737-800

-SK 2000~4000ft Broken, 11000ft overcast

-TA -14 C

-WV 030 방향에서 45kts

-TB 중간정도(Moderate) 강도의 CAT(청천난류) 터뷸런스가 6000~8000ft 사이에 형성

-IC 약한 결빙이 2000~4000ft 사이에 형성

-RM 특이사항으로 약한 눈·우박이 포함되어 있음.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위치 정보는 저렇게 VOR에서 방위거리로 입력해도 되고 Waypoint를 직접 언급한다거나 위도 경도를 직접 알려줘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정보를 받은 ATC에서는 해당 지역 해당 고도에 한동안 비행기를 되도록 보내지 않도록 안내합니다. 한 지역에 TB가 연속해서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한 번 발생한 지역에서는 다시 TB가 발생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PIREP 보고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ATC를 들어보면 한국 공역의 경우 운항승무원들이 단순히 “FL 몇부터 몇까지 모더릿 터뷸런스 있습니다!” 라고 알려주기도 합니다. 그 외 보고는 따로 들어가는 건지, 아니면 이 보고를 바탕으로 ATC에서 별도 작업을 통해 항공기상청으로 자료를 보내는지는 역시 현직에 계신 분들께서...

 

뭐 이런 과정을 거쳐 터뷸런스 회피가 이루어지긴 합니다만, 가장 좋은 건 미리 터뷸런스 발생 예상 지역을 피하는 거겠죠.

 

 

 

◆SIGMET 활용

 

이를 위해 각 FIR에서는 특정 지역에 난기상 가능성이 높을 경우 SIGMET를 발표합니다.

 

Significant Meteorological information의 약자로 위험기상 안내 정도가 되겠습니다.

 

skyvector 홈페이지에서 우리도 쉽게 SIGMET를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SIGMET는 10000ft 이상에서만 발표되고, 아래와 같은 정보를 포함합니다.

 

위치부호-전문번호-유효기간-발표기관-비행정보구역-기상현상-예상패턴-강도변화-그외정보

 

역시 예를 좀 들어볼까요?

 

RKRR SIGMET 01 VALID 150100/150500 RKSI-

INCHEON FIR FRQ CB/TS OBS AT 0030Z TOP FL430

BOUNDED BY 31N152E 38N165E 43N165E 31N165E AND 31N152E

MOV ENE 20KT NC=

 

-RKRR 인천컨트롤

-SIGMET 01 zulu time 기준 오늘 첫 번째로 발표되는 SIGMET

-VALID 150100/150500 15일 01시~05시 유효

-RKSI- 발표기관 인천공항기상대

-INCHEON FIR 대한민국 인천 비행정보구역

-FRQ CB/TS 빈번한(frequent) 적란운과 뇌우(ThunderStorm)

-OBS AT 0030Z TOP FL430 직접 관측한 내용으로 00:30에 CB 최상층부 FL430

-BOUNDED BY 31N152E 38N165E 43N165E 31N165E AND 31N152E

-MOV ENE 20KT 동북동 방향으로 20kt 속도로 이동 중

-NC=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등의) 변화 없음

 

복잡한데, 쉽게 가시죠..

 

-CB : 적란운

-TS : 뇌우

-ICE : 결빙

-TB 혹은 TURB : 난기류

 

이런 정보만 대충 봐도 됩니다. skyvector에서 조회할 수 있는 SIGMET는 꽤 간단한데, 얼마부터 얼마까지 고도에서 난기류 혹은 결빙 혹은 뇌우 등등 딱 보시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정보들만 나열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보시면 딱 알아요. (아래 그림의 파란 부분에는 모두 SIGMET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SKYVECTOR에서 열람할 수 있는 SIGMET 정보 / 자료 : skyvector.com

 

 

난기류, 특히 CAT의 경우 구체적인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발생 확률을 미리 계산하고 운항승무원들의 추가적인 보고도 받아 자료를 쌓고 기상학자들의 연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맨 위에 언급한 HL7710은 현재도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잘 날아다니고 있는 안전한 항공기입니다. 조종사들의 대처가 적절했고 당시 기체에 무리가 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난기류에 대해 제가 이해한 부분만 간략히 정리해 봤습니다. 깊고 넓게 정리하고 싶어서 각종 자료를 많이 찾아봤는데 결국 이해한 부분은 요만큼밖에 되지 않습니다. 틀린 부분 많을 수 있습니다. 덧글 등으로 언제든 지적 주시면서 해당 부분도 수정하고 같이 정보 공유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

 

 

 

◆참고한 자료


1.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항공기 사고조사보고서 ARAIB/AAR1302

 

2. 항공기상청보 2008 March No.5

 

3. 한국에서 발생한 청천난류 사례에서 나타나는 종관규모 대기상태에 대한 연구 연세대 대기과학과

 

4. 한국의 청천난류 예보 시스템에 대한 연구 Part I & II 연세대학교 대기과학과

 

5. Statistics and Possible Sources of Aviation Turbulence over South Korea 연세대학교 대기과학과

 

6. A Numerical Study of Clear-Air Turbulence (CAT) Encounters Occurred in Korea 연세대학교 대기과학과

 

7. FAA PIREP FORM

 

8. IVAO SIGMET

Posted by 녹슨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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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을 알래스카로 다녀왔다는 친구의 페이스북 포스트를 보다가 앵커리지 국제공항에 대한 글이 있어서 이 친구의 글을 살짝 보충하는 ‘라이트 항덕’ 차원에서 아는 내용+구글신 도움을 받아 정리해 봅니다.

 

 

앵커리지 '테드 스티븐스 앵커리지 국제공항의 항공차트

 

 

저 페이스북 글에 있는 것처럼 앵커리지 국제공항은 현재는 여객 국제선을 취급하지 않는 희한한 국제공항입니다. 하지만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앵커리지 국제공항은 서방 대부분의 항공편이 대륙 간 여객 수송을 할 때 꼭 한 번씩은 들러야 하는 매우 중요한 ‘포커스 시티’ 역할을 해 왔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이 위용을 떨치던 냉전 시기, 앵커리지는 우리나라 항공사가 유럽에 갈 때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1975년, 처음으로 파리에 취항한 대한항공은 지금은 사라진 항공기 제조사인 맥도널 더글러스사의 DC-10을 파리에 띄웁니다. 이 비행기의 최대 항속거리는 1만km 정도로 1960~1970년대 항공기 치고는 제법 긴 항속거리를 가진 비행기였지만, 역시 소련 상공을 통과하지 못한 채 캄차카 반도 옆으로 'V턴' 해야 했던 당시에는 논스톱 비행이 불가능했습니다. 따라서 앵커리지에 중간기착.

 

 

대한항공의 DC-10 항공기 (출처 : Airliners.net)

 

 

대한항공은 ▲1983년 들어 이 노선의 주력 항공기를 대한항공을 키워준 1등공신 보잉 747로 교체하고, ▲다음해 서울-앵커리지-프랑크푸르트 취항,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서울-앵커리지-런던 취항, ▲또 그 다음해 암스테르담과 취리히 취항 등으로 사세를 확장해 갔습니다.

 

 

 

대한항공이 세계적 항공사로 성장하는 데 말 그대로 ‘교두보’ 역할을 했던 앵커리지 공항은 1990년 이후 크게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냉전이 끝났으니까요. 1990년 독일 통일, 1991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가 이어지면서 유라시아 대륙권 항공사들이 바라 마지않던 대로 소련 영공이 서방 항공사에게도 개방됐기 때문입니다. 유럽행 항공기의 앵커리지 시대는 1990년 이후 냉전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런 항로는 1991년 이후에나 가능해졌습니다. (출처 : Flightradar24)

 

 

앵커리지 공항에 중간기착하는 항공기는 거의 대부분 구주행이었습니다. 다만 1999년~2001년 사이 미주인 토론토를 오가는 항공편이 앵커리지에 중간기착하는 노선이 하나 있었습니다. 서울-미국 동부 직항도 가능한 747-400을 집어넣고도 중간기착을 해야 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김포국제공항의 폐쇄 시간(커퓨 타임) 때문이었습니다. 제 검색 능력이 꽝이라 정확한 시간 정보를 찾을 수가 없는데, 당시 토론토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편이 직항을 하게 되면 도착 시간이 김포공항의 폐쇄 시간(밤11시~아침 6시) 사이에 걸렸다고 합니다. 도착 시간을 미뤄야 했던 대한항공은 연료를 반만 실어 앵커리지에 기착, 여기서 기름을 한 번 다시 채우고 서울까지 날아오는 식으로 길어진 비행시간에 대한 손해를 만회했겠죠. 2001년 이후 이 노선이 다시 직항으로 바뀐 이유도 간단히 정리됩니다. 경축 24시간 잠들지 않는 인천국제공항 시대 개막.

 

 

 

21세기 들어 여객운송량이 크게 떨어진 앵커리지 공항이지만 대한항공에서는 그 이후에도 ‘앵커리지 사랑’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2003, 2005, 2006, 2011 이렇게 4개년에 걸쳐 7, 8월 한정으로 앵커리지 계절편 직항을 띄운 적이 있습니다. 당시 알래스카 여행편 광고가 제 뇌리엔 아직 매우 깊이 남아있습니다.

 

 

대한항공의 앵커리지 직항 광고

 

 

그 외 미주행 항공기는 어땠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미주행 노선은 앵커리지가 아닌 호눌룰루를 사랑했습니다. 이유는 아래 자세히 적겠습니다. 대한항공의 대표노선 KE001/002편이 1972년 처음으로 서울-도쿄-호눌룰루-LA라는 어마무시한 이착륙을 반복하면서 미국행 노선의 첫 발을 뗍니다. 동시에 KE005/006편을 단 노선은 도쿄를 거치지 않고 호눌룰루-LA로 바로 날았습니다.

 

 

 

다만 미주 노선 ‘직항 시대’는 유럽 노선에 비하면 말할 수 없이 빨랐습니다. 대한항공이 서울-LA 직항 노선을 처음 띄운 해가 1979년. 당시 항공기로도 유럽, 미국 서부 도시는 직항이 가능한 항공기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위에 언급했던 서울-파리 첫 취항 당시 대한항공이 투입한 DC-10 항공기 역시 서울-LA 직항 노선을 함께 담당했습니다.

 

 

 

그럼 호눌룰루 시대의 종식도 앵커리지 때보다 더 빨랐을까요. 찾아보니 아니더랍니다. 대한항공은 1995년까지 서울-호눌룰루-LA 노선을 잘도 굴려먹었습니다. 심지어 앵커리지에 망조의 기운이 스물스물 엄습하던 1989년에 대한항공은 주 4회 운항하던 서울-호눌룰루-LA 노선을 주 10회로 오히려 증편합니다. 어차피 LA행 수요는 넘쳐나고, 하와이행 수요도 적지 않으니 LA 직항 노선과 호눌룰루-LA 노선을 함께 돌려도 그만큼 손님을 꽉꽉 채워 비행기를 날릴 수 있었겠죠.

 

 

 

자 그럼, 미주행 노선은 왜 북극항로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지금부터 좀 살펴볼까요.

 

 

 

엄밀히 얘기하면 미주행 노선이 북극항로를 아예 쓰지 않는 건 아닙니다. 좀 더 자세히는, 서울발 미주행은 태평양 횡단 루트를, 미주발 서울행은 북극항로를 오갑니다.

 

 

빨간 선이 인천->시애틀 / 파란 선이 시애틀->인천 (출처 : Flightaware)

 

 

우선 가는 데 태평양 횡단 루트를 쓰는 이유는 다름 아닌 바람 이득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국제선 항공기가 주로 날아다니는 고도는 35000~40000피트 사이. 해발 10km 안팎입니다. 그리고 북태평양 상공에서 이 정도 고도에 부는 바람 중에는 그 유명한 ‘제트기류’가 어마무시한 속도로 흐릅니다. 대충 시속 200km 정도. 빠르게 불 때는 400km/h도 분다네요.

 

 

2016년 6월 15일 오후 3시(KST)의 10km 상공 제트기류. (출처 : 기상청)

파란 색깔이 100kts(약 180km/h) 안팎.

중심선이 알류산 열도 바로 아래를 지납니다. 위 그림 빨간 선과 비교해 보세요.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제트기류는 항공기가 동아시아에서 미주로 향할 때 뒤에서 비행기를 밀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비행기는 더 빨리 더 적은 연료로 목적지에 갈 수 있겠죠. 그래서 태평양 횡단 항로는 바로 이 제트기류를 최대한 타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미국을 자주 오가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미국에 갈 때 걸리는 비행시간이 올 때보다 2시간이나 덜 걸릴 정도로 제트기류의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그런데 바람은 시시각각 다르게 부는데? 그래서 태평양 항로도 시시각각까진 아니지만 매일 다르게 변합니다. 미국 연방항공청이 매일 발표하는 이 태평양 횡단 루트의 이름은 PACOTS(PACific Organazed Track System)이라고 부릅니다. PACOTS는 항공기가 제트기류를 타고 적은 연료로 빨리 갈 수 있는 시간과 항속거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매일 가장 경제적인 항로를 만들어 일반에 공개합니다.

 

 

태평양항로 생성 조건. 항공사의 수요, 군사작전, 주요 기상, 그 외(출처: 미연방항공청)

 

 

 

PACOTS와 북극항로의 거리를 비교해보면 인천공항-LA공항 기준 태평양 횡단로가 약 1만km(5450해상마일). 북극항로가 약 1만300km(5550해상마일) 정도가 나옵니다. 1만km를 오가는데 300km 차이면 뭐 별 것도 아니겠지만, 이 정도 거리에 하루에도 십수 대씩, 매일, 기름먹는 하마같은 비행기를 띄우는 항공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겠죠. 그래도 시속 200km씩 되는 바람을 뚫고 가느니 상대적으로 잔잔한 편서풍을 맞으면서 좀 더 먼 거리를 가는 게 좀 더 기름을 아낄 수 있다는 계산값이 나왔겠죠.

 

 

 

+)
위 kini의 페이스북 게시글에 나온 ‘앵커리지 공항의 우동 가게’는 실제로 당시 우리나라보다 해외여행이 먼저 활성화 돼서 유럽을 오가던 일본 사람들에게는 매우 각별한 가게였던 모양입니다. 당시를 추억하는 일본 사람들이 인터넷에 쓴 글을 보면 “특별히 맛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일본 사람에게 우동은 특별한 음식이기 때문에 사먹지 않을 수 없었다”거나 “그 우동가게 주인은 3대 째이고 한국인”라면서 “1대 주인은 정말 일본 본토에서 먹는 맛과 같은 우동을 만들었지만 이후 경영권이 앵커리지 기내식 회사에 넘어가면서 맛이 덜해졌다”는 내용들이 나오네요. :)

Posted by 녹슨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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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6일 부산을 출발해 필리핀 세부로 갈 예정이었던 진에어 LJ037 항공기가 이륙 직후 엔진에서 불꽃이 튀었다는 승객의 신고를 받고 인천공항에 긴급 착륙했습니다. 항공사는 계기상 엔진에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지만 아무튼 신고를 접수하고 회항을 결정하고 착륙하기까지 불안감을 느낀 승객들도 있었을 수 있습니다.

 

 

회항한 항공기인 진에어 HL7555 항공기. (출처 planespotters.net)

 

 

 

그런데 시간을 보면 ‘긴급 착륙’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긴 시간동안 공중에 머물렀습니다. 회항 항공편인 LJ037은 밤 9시 35분에 출발하는 항공편입니다. 보도된 이륙 시간은 밤 9시 51분. 그런데 인천공항에 착륙한 시간은 이로부터 약 2시간 후인 밤 11시 50분 쯤입니다. 상공에서 두 시간이나 머무느라 이 비행기는 결국 출발지인 부산에 착륙하지도 못하고 인천으로 가야 했습니다. (인천공항을 제외한 우리나라 대부분 공항은 밤 11시 이후 이착륙이 금지됩니다.) 엔진에 문제가 있었다면 즉시 착륙했어야 할 텐데 착륙까지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을까요.

 

 

회항 항공기의 비행 궤적. 수 차례 홀딩(원형비행)을 했습니다. (출처 Flightradar)

 

 

 

진에어 측은 "착륙하기 위해 비행기 무게를 줄이느라 연료를 소모시키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적잖은 항공기에는 '연료배출장치(Fuel Jettison System)'이라는 장치가 있습니다. 연료를 소모시키는 게 아니라 허공여 연료를 버려 빨리 착륙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장치입니다.

 

노스웨스트항공 B747-400기의 연료 배출 영상. B737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럼 진에어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저가항공사라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그런 장치를 달지 않은 건 아닐까? 아닙니다. 이유는 해당 항공기가 보잉사의 737-800기였기 때문입니다. 이 항공기는 연료배출장치가 설계부터 장착되지 않은 항공기입니다. 연료를 버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보니 두 시간동안 하늘을 빙빙 돌아 연료를 태워 없애야 했던 겁니다.

 

호주의 두 메이저 항공사 콴타스의 B737(왼쪽)과 버진오스트레일리아의 B777 날개 비교.

B777에는 있는 연료 배출구가 B737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진에어 외에도, 모든 737 여객기에는 이 장치가 없습니다. 737 항공기뿐만 아니라 A320 계열의 항공기에도 연료 배출 장치는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737 항공기는 대한항공을 비롯해 에어부산을 제외한 모든 저가항공사에서 보유하고 있습니다. A320 계열 항공기는 아시아나와 에어부산이 주로 가지고 있습니다. 두 기종은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많은 기종으로, 전 세계에서 날아다니는 두 기종 비행기 대수를 합치면 1만5000대 가량이나 됩니다.

 

 

그럼 위험하게 왜 이들 기종은 연료 배출 장치를 달지 않았을까요. 한 마디로 정리하면 '필요 없어서'입니다. 항공기 관련 국제 규정상 달지 않아도 되고 실제 구조상으로도 별로 필요가 없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전세계 항공 규제의 표본이 되는 미 연방 항공국(FAA)의 ‘수송용 항공기의 감항성 표준(Airworthiness Standards : Transport Category Airplanes)’ 25조 1001항을 보면 연료 배출 장치 규정을 이렇게 정해놓고 있습니다.

 

 

"모든 항공기는 연료 배출 장치를 설치하여야 한다. 다만 이 규정의 25조 119항과 25조 121(b)항의 조건을 만족하는 항공기는 그렇지 아니하다."

 

FAA의 '수송용 항공기 감항성 표준. (출처 미연방규정집 Code of Federal Regulations)

 

 

 

25조 119항과 25조 121(b)항의 내용은 조금 복잡한데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모든 엔진이 작동할 때 3.2도 이상의 상승각, 엔진 하나가 작동하지 않을 때 2.4도 이상의 상승각을 유지할 수 있는 항공기."

 

 

점보 제트기인 B747이나 그보다 큰 A380, 장거리 여객기인 B777 등은 연료와 승객을 최대치까지 싣고 비행할 경우 너무 무거워서 이 조건을 만족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작은 비행기인 B737이나 A320 계열의 경우 비행기가 이륙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연료와 승객을 싣더라도 이 조건을 만족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연료 배출 시스템을 달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연료를 최대로 채우고 날아도 6시간 이상 날기 어려운 B737의 경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다보니 연료배출장치를 달지 않으려 한 점도 있겠죠. B737은 무게를 줄이다 줄이다 못해 랜딩기어(바퀴)를 접어 넣은 후 덮을 뚜껑조차 달아놓지 않았습니다.)

 

 

B737(왼쪽)과 B777의 랜딩기어(바퀴) 수납 형태 비교. (B777 영상은 여기로.) 

뚜껑이 완전히 덮이는 B777에 비해 B737은 바퀴가 노출된 형태로 날아다닙니다.

 

 

 

그런데 연료배출장치 장착에 대한 이 규정은 1968년에 개정된 규정입니다. 그 전까지 규정은 이랬습니다.

 

 

“모든 항공기는 연료배출장치를 설치하여야 한다. 다만 항공기의 최대 이륙 중량이 최대 착륙 중량의 105% 이하일 경우에는 그렇지 아니하다.”
(최대 이륙 중량은 ‘승객과 연료를 실은 전체 무게가 이보다 무거운 비행기는 못 날아요’라는 뜻이고 최대 착륙 중량은 ‘이 무게보다 무거운 비행기는 착륙할 때 사고가 날 수 있어요’라는 의미입니다.)

 

 

이번에 회항한 진에어의 LJ037편은 B737-800 항공기이고, 최대이륙중량은 약 79t, 최대착륙중량은 약 66t입니다. 최대이륙중량이 최대착륙중량의 120%에 육박하므로, 1967년까지 규정에 의하면 연료배출장치가 달려 있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B737 여객기가 처음 세상에 나온 시점이 1968년이기 때문에 옛 규정을 적용받지 않은 겁니다. (A320은 B737보다 더 늦게 만들어졌습니다.)

 

 

연료배출장치에 대한 규정이 무게 기준에서 성능 기준으로 바뀐 건, 항공기의 안전도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걸 의미합니다. 예전 규정이 “연료 안 버리고 착륙하면 비행기가 무거워서 랜딩기어(바퀴)가 부러지거나 항공기가 상할 수 있어요”라면 현재 규정은 “연료 안 버리고 착륙하다 착륙에 실패하면 비행기가 다시 못 떠올라서 사고 날 수 있어요”라는 의미가 된 겁니다. 바꿔 말하면, 일단 떠오른 B737의 경우, 이륙 직후 문제가 생기면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하는 것보다 비행하면서 연료를 소모하는 게 더 안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엔진 하나로도 충분히 날 수 있으니 일단 무게를 줄이면서 안전을 최대한으로 확보할 것”을 권고한다는 얘기죠.

 

 

B737 항공기의 메인 랜딩기어. 랜딩기어의 무게는 항공기 전체 무게의 4% 가량 나갑니다.

강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무거워집니다. (출처 Airliners.net)

 

 

 

새로 바뀐 규정에 따르면, 이번 사고기인 LJ037 편의 승무원들은 대체로 적절한 판단을 했던 걸로 보입니다. 물론 엔진에 정말 이상이 있었다면 (진에어 측은 계기상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으나) 이 책임을 피하긴 어렵겠지만, 일단 승객의 신고에 즉시 회항을 결정했고, 상공에서 연료를 최대한 소모한 뒤 인천공항으로 기수를 돌린 판단은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저가항공사가 이래저래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서울-제주 노선에 의존하던 저가항공사들이 해외 노선을 늘리고 규모를 키워가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가항공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고 '싸면서 안전한' 항공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혜안을 찾아내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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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담으로, 만약 연료배출장치가 달려 있지 않은 항공기가 연료를 태울 여유도 없이 최대착륙중량보다 무거운 상태에서 착륙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그냥 착륙하면 된다’입니다. 요즘 여객기로 운행하고 있는 민항기들이 대체로 그 정도의 무게는 버티면서 착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FAA 규정을 보면 항공기의 랜딩기어는 착륙 중량에 대해 초당 3m(10피트)의 강하율로 지상에 접지했을 때 버틸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합니다. 분당 180m(600피트)의 강하율인데, 이 정도면 비행기가 공항에 접근하기 위해 빠르게 내려가는 강하율과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실제 비행기가 땅에 닿는 순간의 강하율을 초당 0.5~1m(2~3피트)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눈·비 때문에 활주로가 미끄러운 경우 시도하는 경착륙 시에도 접지 강하율은 초당 2m(6피트)를 넘지 않습니다.

 

Jet Airways B737-700 항공기의 착륙(Touchdown) 순간. (출처 Avsim.net)

착륙하기 직전 사진처럼 머리를 들고 강하율을 크게 줄입니다.

(참고로 B737-700 항공기는 국내에서는 이스타항공이 단 세 대만 보유한 '레어템'입니다.)


 

 

실제로 연료를 태울 사이도 없이 비상착륙해야 하는 경우가 벌어졌어도 큰 사고로 이어진 경우는 거의 없는 모양입니다. 보잉사에서 서비스 통계를 살펴봤더니 “최대착륙중량 초과 착륙으로 인한 항공기 손상은 ‘지극히 드물었다’고 하네요. 그 정도는 버틸 수 있게 설계되어 있으니 이도저도 안 될 때는 과감히 착륙하라는 뜻이겠지요.

 

 

출처 AERO, 2007년 (보잉사가 발간하는 항공기술잡지)

 

 

 

++) 그럼 B747, A380처럼 연료배출장치가 달린 대형 비행기들은 비상상황에 얼마나 빨리 착륙할 수 있을까요. FAA에서는 이에 대한 규정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저 위에 언급한 감항성 표준 25조 1001항에 함께 언급돼 있습니다.

 

 

“연료배출장치는 해당 항공기가 25조 121(b)항의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수준까지 연료를 버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15분 이내여야 한다.”

Posted by 녹슨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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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에서 착륙 중 사고가 난 아시아나항공 A320-232 HL7762 항공기(출처 flightAware)


  14일 밤 6시 50분. 승무원 8명과 승객 74여 명을 태운 아시아나 162편이 인천공항을 이륙했습니다. 경기도와 강원도를 동쪽으로 가로지른 OZ162편은 강릉시를 조금 못 미쳐 기수를 남동쪽으로 돌린 뒤 고도 1만80미터(3만3000피트), 시속 800km(430kt)로 날아갔습니다. 이륙 약 50분 뒤인 7시 40분쯤 고도를 낮추고 착륙 절차를 시작한 OZ162편은 약 30분쯤 후 활주로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OZ162편의 항로. 여기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반 바퀴를 돌았다고 하니 작은 사고는 아니었습니다. 사망자나 중상자가 없었던 게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출처 로이터


  기사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몇몇 보도를 보니 통상 쓰는 활주로가 아닌 다른 활주로를 이용해서 그랬다는 기사 등등 조종사에 대한 기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좀 의아했습니다. 히로시마에 정기편을 운항하는 아시아나항공이 그 정도로 숙달되지 않은 조종사를 보냈을까. 지금 상황에서 접근할 수 있는 정보만으로 단편적인 부분을 좀 살펴봤습니다.


1. "왜인지 모를 활주로 변경"?

  조종사 기량 미달은 항공사고가 터질 때마다 추정으로 나오는 원인입니다. 특히 이번 사고에서는 △비행기가 통상 사용하는 활주로가 아닌 반대편 활주로를 사용했고, △해당 활주로에는 정밀접근유도장치(ILS)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조종사의 훈련 미숙 같은 의혹이 기사에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반대편 활주로로 착륙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어 보입니다. 특히 히로시마에 정기편을 투입해 온 아시아나 조종사들이라면 더욱 말이죠.

  먼저 위에 링크한 기사 중 OZ162편이 "무슨 이유인지 동쪽에서 진입하는 바람에 계기착륙장치가 대응하지 못했다"는 부분은 항공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말한 걸로 보입니다. 이유는

1. OZ162편 착륙 당시 바람 방향이 서에서 동으로 불었고

   -> 비행기는 바람을 마주보고 착륙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동에서 서로 착륙해야 합니다.

2. 지상의 항법장비 도움 없이도 항공기에 설치된 자동비행 시스템의 도움을 일부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비행기가 착륙할 당시의 날씨입니다. FlightAware 같은 비행 궤적 추적 사이트 정보를 보면 OZ162편이 착륙한 시각은 우리 시각으로 8시 10분이 조금 안 된 때입니다. 먼저 이 때의 날씨를 보면


히로시마 공항의 기상정보 트위터.

  이 중 비행기 착륙 시간과 가장 가까운 기상정보는 맨 아래 것입니다. 복잡한데 조금 뜯어보면 이렇습니다.


RJOA - 히로시마 공항 국제상업항공기구(ICAO) 식별부호

141100Z - 14일 UTC11:00 즉 한국표준시로는 20:00시가 됩니다.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한 시간은 20:04~20:05 정도로 검색됩니다.)

VRB02KT - 02KT는 바람의 세기가 시속 2노트라는 뜻이고 VRB는 variable의 약자입니다. 즉 바람의 방향이 변화무쌍해 어디라고 지정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6000 - 공항의 시계가 6000m 수준.

SHRA - Light shower of rain. 심하지 않은 소낙성 비가 내리고 있음.

PRFG - Partial Fog. 공항의 일부가 안개에 덮여 보이지 않음.

FEW000 - FEW는 few cloud. 구름 약간. 000은 구름의 고도입니다. 즉 구름이 지표면에 덮여 있다는 뜻입니다. 안개겠죠.

  대략 요약하면 이날 히로시마 공항에는 소낙성 비가 내리고 있었고, 바람 방향을 일관성있게 측정하기 어려웠고, 공항은 안개와 구름으로 덮여 공항 일부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뜻입니다.

  다만, 바람의 방향이 변화무쌍했다고 해도, 바람 방향은 전반적으로 서풍 계열(트위터의 210, 150 등의 숫자를 주목하세요.)이 불고 있었습니다. 정서방향은 270, 반대로 정동 방향은 90도입니다. 


서풍 계열의 바람. 181~359도에 해당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관제사는 당연히 동에서 서로 항공기를 착륙시키도록 유도하게 됩니다. 즉 OZ162가 동쪽에서 착륙을 시도한 것은 관제사의 지시를 아주 잘 따른 것이었으며, 안전을 위한 최상의 선택이었다는 뜻이 됩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는 상황이 아니라 당연한 상황입니다.


2. 자동착륙장치가 대응 못 해 수동착륙?  

  몇몇 기사에 나온 대로, 동->서 활주로 방향에는 계기착륙장치(ILS)가 설치돼 있지 않습니다. (서->동 방향 활주로에는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계기착륙장치의 도움이 없어도 OZ162기는 항공기 자체에 설치된 자동조종장치의 도움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물론 '비정밀접근'에 해당하지만 몇몇 기사에 나온 뉘앙스처럼 '조종사가 완전히 수동으로' 착륙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히로시마 공항의 동->서 활주로 착륙 절차


  조종사들이 활용하는 항법 차트입니다. 저 그림은 시뮬레이션용으로 제작된 거지만, 실제와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저 그림 중 표창 모양으로 된 기호들은 모두 비행기 자체의 자동항법장치(RNAV)를 사용해 비행할 수 있는 지점들입니다. 최신 항공기에 히로시마 공항의 ICAO 코드를 입력하고 활주로 번호(위 경우 28)을 입력하면 저 항로와 그에 해당하는 고도가 자동으로 표시되고 ILS가 없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자동비행장치의 도움을 받아 활주로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OZ162 기종인 A320-232는 바로 이 '최신 항공기'에 해당합니다. (아시아나뿐 아니라 저가항공사를 포함해 국내 모든 항공사가 운용하는 모든 항공기는 저 RNAV 기능이 다 장착돼 있습니다.)

  거기에다 착륙 절차를 보면 완전한 직선입니다. 최소 수천 시간의 비행 경력이 있는 민항사 기장이 저런 착륙 절차를 '조종 미숙'으로 실패했다고 단정짓기는 상식적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김포공항의 착륙 절차. ILS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히로시마보다 확실히 복잡합니다.

  여담으로, 계기착륙장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라도 조종사들 대부분은 마지막 착륙 절차를 수동으로 시행합니다. 착륙 순간까지 자동착륙을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기계보다는 사람의 판단이 긴급상황에 더 훌륭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3. 그럼에도 신경이 쓰이는 점들.

  그럼에도 찜찜한 부분은 있습니다. 시계가 불량한데도 불구하고 왜 비행기가 저고도로 날아들었나 하는 점입니다.

SHRA-가벼운 소낙성 비 / PRFG-공항 일부를 가린 안개


 위의 기상정보 데이터를 다시 가져와 봤습니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두 시간 전부터 소낙성 비가 내렸고 한시간 반 전부터 안개가 끼어 있었습니다. 활주로는 당연히 많이 젖어 있었을 거고 미끄러웠겠죠. 이런 상황이라면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 조종사들은 착륙 순간에 비행기를 활주로에 조금 세게 '꿍' 하고 내려찍습니다. 바퀴가 땅에 닿는 순간 마찰력을 최대로 활용해서 비행기 속도를 빠르게 줄이고 미끄러지는 것도 피하기 위해서죠. 

(날씨가 궂은 날 비행기를 탔을 때 조종사들이 바닥에 비행기를 세게 찍는 건 절대 조종사 기량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이런걸 펌 랜딩-Firm Landing-이라고 하는데, 비행기에 가해지는 피로도를 최소로 줄이면서 땅에 내리찍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베테랑 조종사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보면 OZ162편은 활주로에 닿기 직전 고도를 규정보다 더 낮췄습니다. 지상 구조물에 비행기가 닿을 정도였다면 당연히 비행기는 활주로에 미끄러지듯 들어갔을 거고 바퀴 마찰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비행기가 눈 위 자동차처럼 제동력을 상실할 확률이 높아지겠죠.

  그렇다면 혹시 지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계가 안 좋아서 조종사가 활주로를 찾기 위해 고도를 낮추진 않았을까. 가능성이 없진 않겠지만 높지도 않아 보입니다. 히로시마 공항의 동->서 활주로 착륙 규정에는 지상 433ft(약 130m)에서 활주로가 보이지 않을 경우 착륙을 포기하고 재상승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빨간 상자 속 괄호 안의 숫자만큼 내려와도 활주로가 안보이면 다시 상승해야 합니다.


  만약 높이 짐작을 못 할 정도로 안개가 짙었다면 조종사가 회항을 결정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든 착륙 시점의 시계는 수치상 6000m 수준이었습니다. 만약 전체 시계는 나쁘지 않은데 유독 활주로 자체의 시계만 나쁘다면 그런 정보는 당연히 위 기상정보에 포함됩니다. 활주로 위의 가시거리를 따로 표현한 기상정보는 RVR(Runway visual range)로 표현됩니다.

  정황상의 문제이지만, 제 생각에는 조종사가 착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리한 착륙을 시도했다고 보기도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착륙 사고가 난 지 2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해당 항공사의 조종사가 그 정도로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했을까요.

  국지성 소나기, 바람의 방향이 빠른 시간에 100도를 넘나들 정도로 바뀌는 상황, 공항을 가릴 정도로 낮게 깔린 안개 등의 상황을 종합하면, 공항 주변으로 속도가 빠른 저기압이 통과했거나 순간적인 하강기류, 돌풍 같은 것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공개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지만, 이번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려면 착륙 시점의 공항 날씨를 아주 미세한 단위로 분석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Posted by 녹슨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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